[르포] 홍대에서 벌어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경찰과 외국인, 방역단속 놓고 눈치게임

이학준 기자 2021. 10. 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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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경찰청 합동 홍대 단속반 활동 개시
방역 외에 헬멧 착용, 일방통행까지 단속
경찰이 점령한 홍대 놀이터.. 외국인은 흩어져 '눈치게임'

“What the fXXX... why are they here?(젠장… 저 사람들 왜 저기 있어?)”

지난 9월 30일 오후 11시쯤 ‘홍대 놀이터’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화공원 골목에 들어선 외국인 3명이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이들은 급하게 놀이터를 등진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들의 등 뒤에선 경찰차 5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서울 마포경찰서와 마포구청이 합동으로 홍대 놀이터, 상상마당 등 홍대 일대에 대한 방역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 지역은 주말마다 수백명의 외국인이 몰려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단골 장소다.

1일 경찰에 따르면 마포경찰서와 마포구청은 지난 9월 30일부터 이날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홍대 놀이터 일대에서 방역수칙 위반에 대한 단속을 진행했다. 외국인 수백명이 마스크 없이 술판을 벌여도 이들을 강제 해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구청과 경찰이 함께 단속에 나선 것이다.

구청 직원들과 경찰관들은 인근 술집이 영업을 종료하기 시작하는 오후 9시 40분쯤부터 일제히 호루라기를 불며 길거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시민들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8명 남짓한 경찰관들은 3명 이상 뭉쳐있는 일행들을 하나 하나 경광봉으로 가리키며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외국인에겐 “No 3 people(3명은 안 됩니다)”, 한국인에겐 “3인 이상 집합 금지입니다”라는 말로 방역수칙을 반복해서 안내했다. 3인 이상 집합 금지를 위반하고 있는 건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좁은 홍대 놀이터 골목에 호루라기 굉음이 가득 울리자, 술집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미소 짓던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 겪는 적극적인 단속 조치에 긴장한 듯했다. 한 외국인 남성은 경찰관이 빨간 경광봉을 자신에게 향하자 당황해하며 문제 없이 제대로 쓰고 있던 마스크를 한 번 더 고쳐썼다.

지난달 30일 홍대 문화공원(놀이터) 골목에서 마포 구청·경찰 합동 단속반이 불법행위를 단속 중인 모습. 왼쪽은 전동킥보드 헬멧 미착용으로 범칙금 부과하는 장면, 오른쪽은 마스크 미착용자에게 마스크 착용을 계도하는 장면이다. /최정석 기자

마스크를 코 밑에 내려쓰는 일명 ‘코스크’ 상태로 놀이터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은 단속반이 먼저 호루라기를 불기도 전에 알아서 마스크를 콧잔등까지 올려 썼다. 형광조끼 차림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구청 직원들과 경찰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은 채 길에서 담배를 피던 외국인은 경찰이 “마스크, 마스크”라고 하자 씨익 웃으며 서툰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마스크는 끝까지 쓰지 않았다.

구청과 경찰이 홍대 놀이터 골목 일대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자 치열한 ‘눈치게임’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떻게든 놀이터에 모여 남은 술자리를 이어가려는 외국인들과 이들을 막으려는 구청·경찰들의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졌다.

외국인들은 경찰이 철수할 때를 기다리며 해당 지역 주변을 계속 돌았다. 이들은 합동 단속반이 자리를 잡고 있던 홍대 놀이터 중심부에서 2분 정도 거리에 있는 외진 골목길이나 상상마당, 도로변 버스정류장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들 중 일부는 3인 이상 야간 집합 금지를 피하고자 2인 1조로 움직이며 망이라도 보듯 경찰이 자리 잡은 놀이터 중심부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덕분에 이날 11시 30분쯤부터는 아예 구청과 경찰의 주요 단속 지역이었던 놀이터만 고요했고, 오히려 그 주변 지역이 훨씬 더 시끄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난 30일 11시 30분쯤 홍대의 모습. 놀이터(왼쪽)엔 경찰을 제외하곤 사람이 거의 없는 반면, 도로변 버스정류장(오른쪽)엔 20명 남짓한 외국인이 모여있다. /최정석 기자

합동 단속반 등장에 시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홍대에 거주 중인 이모(37)씨는 “평소 같으면 이 시간대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차 한 대도 뺄 수 없게 된다”며 “사람들 해산좀 시키라고 신고 정말 많이 했는데 이제야 좀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외국인들은 구청과 경찰의 이러한 고압적 단속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올해 3월부터 6개월째 한국에 거주 중인 네덜란드 유학생 A(21)씨는 “한국의 방역은 죄다 찍어 누르는 방식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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