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평생의 벗, 문학평론가 황광수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여론독자부 2021. 10. 1. 17: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
제 안의 또다른 목소리가 되어
늘 저를 응원해주셨던 선생님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 주셨듯
저도 누군가의 결핍 채워나갈 것
정여울 작가
[서울경제]

선생님, 그곳은 많이 춥지 않으신가요. 선생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는데, 그 차가운 관 안에 선생님을 홀로 내버려두고 돌아서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마스크를 쓴 제 양 볼 안쪽으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선생님. 혹시 저에게 서운한 것은 없으셨나요. 서운함이 있다면, 제 모자람이자 어리석음 때문이라 생각하시고,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도 선생님은 저에게 좀처럼 서운한 말씀, 서운한 행동을 한 적이 없으셨지요. 참,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도 서운한 구석이 한두 개 정도는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정말 몇 달 전 저에게 정말 딱 한 번, 서운한 일이 일어났지요.

바로 선생님이 저의 도움을 거부하신 순간이었어요. 문병을 거절하셨을 때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덜 서운했는데, 그날은 눈앞에서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는 걸 생생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날 우리들의 고전읽기 세미나는 6호선 한강진역 근처에서 시작되었지요. 큰길 건너편에는 카페가 있을 것 같아서 선생님을 지하도 쪽으로 모셨는데, 지칠 대로 지친 선생님이 그만 계단에 풀썩 주저앉으셨지요. 제 곁에서 늘 든든하게 버티고 계셨던 선생님이라는 거목이, 바로 제 앞에서 무너지는 느낌에 소스라쳤습니다. 제가 반사적으로 선생님을 일으켜드리기 위해 어깨를 들어올리려 하니까, 선생님이 온 힘을 다해 제 도움을 거절하시는 몸짓이 느껴졌어요. 제가 혹시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 당황스러웠지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아셨는지, 미소지으며 말씀하셨지요.

“혼자 걸을 거야. 아직은 혼자 걸을 수 있어. 그런데 여울아, 너무 멀리 가지는 말자. 저 모퉁이까지는 혼자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까마득한 제자인 저에게 기대고 싶지 않은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저에게 한사코 기대지 않으시려 했을 때, 한사코 혼자 걸으시려 했을 때, 처음으로 선생님께 서운했어요. 딱 한 번, 선생님께 섭섭했던 순간이었지요. 사실은 그 순간에조차, 저는 서운하기보다 선생님 안의 어떤 무시무시한 꿋꿋함에 감동을 받았지만요. 돌이켜보니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저를 아끼고 사랑해주어도 한두 번 이상은 저를 서운하게 한 적이 있거든요. 뒤늦게 사과하기도 하고, 뒤늦게 섭섭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유일하게 제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저를 좀처럼 서운하게 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은 제게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단 한 번도 계산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이렇게까지 이 다 큰 아이를 예뻐해도 되나 하는 의구심 따위는 없이, 선생님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상상 속의 딸인 것처럼 저를 완전무결한 기쁨으로 사랑해 주셨어요. 전 그걸 처음부터 알았던 거예요.

인간에게는 가족의 사랑만으로는 갈무리되지 않는 결핍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해주지만, 가족이 아닌 또 다른 타인의 사랑과 우정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친구가 필요하고, 스승이 필요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제 곁에서 ‘제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되어 저를 응원해주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이 상실은, 이 결핍은 결코 아무것으로도 채워지지 못하겠지요. 선생님이 한없이 낯선 존재인 저를 아무 조건없이 사랑해주셨듯이 제가 먼저 사람들을 이해하고, 돌보고, 보살피겠습니다. 그들이 저를 꼰대라 놀려댈지라도, 그들이 저를 재미없다고 면박줄지라도, 제가 먼저 사랑하고, 제가 먼저 다가가고, 제가 먼저 보듬어 안을게요. 선생님,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굶주림도 슬픔도 원한도 없는 곳에서, 부디 향기로운 꿈을 꾸며 저를 기다려주세요. 제 몫의 사랑과 배움과 노동을 다 마치고, 저도 언젠가 그곳에 가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꼭 안아주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오늘의 이 슬픔을, 오늘의 이 고통을 꿋꿋하게 견뎌낼게요.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