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간부가 밝힌 수습기자의 드루킹 무단침입 뒷얘기

김도연 기자 2021. 10. 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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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 TV조선 팩트체크장 저서 '특종맨'
"드루킹 보도, 불의를 불의라 외친 첫 시작"
수습기자 드루킹 사무실 침입으로 경찰과 대치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TV조선 팩트체크장을 맡고 있는 이재홍 기자가 지난 8월 책 '특종을 쫓는 종횡무진 뉴스맨'(특종맨)을 출간했다. 27년 방송기자 생활을 담았다.

이 기자는 1994년 YTN 공채 2기로 입사해 17년 동안 일한 후 2011년 5월 종합편성채널 TV조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케이블TV 출범을 앞두고 창립한 YTN과 2011년 개국한 TV조선에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는 방송산업 파고를 헤쳐온 기자다.

그가 YTN에서 TV조선으로 이직한 2011년은 YTN 노사가 극심하게 대립하던 때다. 2008년 MB정부 낙하산 사장에 맞서다가 해직된 YTN 기자 6명은 복직하지 못하고 있었고, 정권 편향 경영진으로 방송 공정성은 크게 후퇴했다. 이 기자는 책에서 “YTN은 당시 사장 선임 문제로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었고 나는 노와 사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편들지 않는 회색지대에 있었다”고 서술했다.

▲ 경찰이 2018년 4월25일 TV조선 기자의 드루킹 사무실 무단 침입 혐의 등으로 서울 중구 TV조선 보도본부를 압수수색하겠다고 통보한 뒤 영장을 집행하려 했으나 기자들 저항에 막혀 철수했다. 당시 TV조선 기자들이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경찰 압수수색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경찰이 2018년 4월25일 TV조선 기자의 드루킹 사무실 무단 침입 혐의 등으로 서울 중구 TV조선 보도본부를 압수수색하겠다고 통보한 뒤 영장을 집행하려 했으나 기자들 저항에 막혀 일시적으로 철수했다. 당시 이재홍 TV조선 사회부장(오른쪽)이 경찰 관계자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회사가 계속 인사발령을 미루며 자신을 방치했고 이 기자 역시 “내가 설 자리가 더 이상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조선일보 모 국장이 제안한 'TV조선 사회부장' 자리를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경영진과 보수정권을 상대로 한 9년여 공정방송 투쟁에 동참했던 YTN 구성원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이 기자의 종편 이직을 비판한다.

이 기자는 책에서 개국을 앞둔 TV조선과 조선미디어그룹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방송을 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는 무시무시했다. 출범과 동시에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는 기치가 내걸렸다. 지상파 한 곳은 무조건 꺾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부에 회사 인력의 80%가 배정됐다. 자문을 통해 방송 뉴스는 사회부 기사에서 승부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경력 기자로 뽑힌 이들은 방송 경력이 아예 없거나 제대로 된 방송 기자 경험이 일천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중략) 나는 당장 지상파를 이겨낼 만큼 품질 있는 뉴스를 만들 재간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송과 신문사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송에는 괴리가 있었다.(중략) 입사 초기에 엄격하게 일의 ABC를 깨우치도록 해줘야 기본기가 몸에 밸 수 있기 때문에 강도 높게 훈련을 시켰다.”

“조선일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가장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향력과 취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겪은 조선일보 지휘부는 취재에 성역을 두지 않았다.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조선일보는 깊이 있는 취재와 고급 정보가 담긴 차별화된 기사로 명성이 높다. 내부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니 과거 경쟁사의 일원으로 느꼈던 그대로였다. 사안의 정곡을 찌르고 한발 앞선 정보를 제공하고 깜짝 놀랄 만한 뉴스를 터뜨리는 그 위상은 가족으로 합류한 모두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략) 큰 기사를 많이 다뤄 본 신문 출신 간부들의 기사를 보는 눈과 기사의 강약을 조절하는 감각은 남달랐다.(중략) 그들은 우리가 마음껏 싸우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특히 정치권력 검찰권력과의 싸움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신중했다. 수십년 농축된 그들의 저널리즘이 자연스럽게 방송으로 스며들게 된 것이다.”

물론 TV조선은 '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탐사보도가 돋보였지만 무리한 취재로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다. TV조선 수습기자가 2018년 4월 '드루킹' 김동현씨가 운영하던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출판사에 무단 침입한 일이다.

이보다 앞서 TV조선은 드루킹 여론 조작 의혹에 김경수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경찰이 '댓글 공작팀'의 주범과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받은 여권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의원이라고 확인했다”(2018년 4월14일)는 내용이다. 이 기자가 사회부장 때다.

이 기자는 책에서 “의욕이 넘친 수습기자 한 명이 자칭 해당 건물 관리인이라는 사람과 함께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드루킹이 운영한 인터넷 카페) 사무실을 심야에 무단으로 진입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며 “두 사람은 경공모와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다 사무실을 뒤져보자는 쪽으로 결론지었던 모양”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건물 관리인이라고 해서 입주사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모종의 음모를 밝혀내야 한다는 과도한 의협심으로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던 것”이라며 “수습기자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그(서류, 빈 핸드폰, USB 등)중에 USB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아침에 이 얘기를 듣고 C 본부장에게 즉시 보고했고 C 본부장은 USB를 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C 본부장은 현재 조선일보 편집국장인 주용중 국장이다.

▲ TV조선 팩트체크장을 맡고 있는 이재홍 기자가 지난 8월 책 '특종을 쫓는 종횡무진 뉴스맨'(특종맨)을 출간했다. 27년 방송기자 생활을 담았다.

이 기자는 “수습기자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무단 절취로 간주될 여지가 있는 만큼 우리 보도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파주경찰서는 수습기자가 습득했던 USB에서 자료를 빼갔을 수 있다며 보도본부에 대한 압수수색 방침을 나에게 알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와 기자들은 이는 과잉수사로 언론 탄압에 해당된다며 재고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며 “이유는 USB를 습득한 뒤 본사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온 적이 없고 전송한 적도 없어서였다”며 “또 수습 기간 동안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그 기자의 알리바이는 경찰서 CCTV로 확인이 가능하고 문제의 USB를 조사하면 빈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경찰 수사 결과 수습기자 말대로 USB에서 파일을 추출한 적 없고, 개인의 일탈 행위로 드러나 기소 유예 처분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 기자는 “투지가 너무 넘쳤던 그 수습기자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큰 경험을 했다”며 “그의 선배들이 위로를 많이 해줬고 법적인 문제 처리도 발 벗고 나서 도왔다. (중략) 그 기자는 지금 TV조선의 민완 기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수많은 특종을 남기면서…”라고 썼다.

이 기자는 “경찰의 언론사 압수수색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라며 “취재진의 실수도 있었다. 취재에 조금의 과오가 없도록 했어야 했는데 취재에만 몰두한 나머지 실정법 저촉 행위가 있었던 것이다. 입사한 지 두 달 남짓한 수습기자의 과도한 행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회사 차원의 지시는 절대 없었다”고 썼다.

당시 경찰은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에 위치한 TV조선 보도본부를 압수수색하려 했고 TV조선 기자들은 “언론탄압 결사반대” 피켓을 들고 현장을 지켰다. 기자를 대표해 경찰 집행을 막아선 인사가 이 기자였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언론의 숙명은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국민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리하게 수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책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보도를 “불의를 불의라고 주저 없이 외친 첫 시작”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우리는 똘똘 뭉쳐 막아냈다.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했고 민주주의를 사수해야 했다”며 “정치권은 특검(허익범 특검)을 도입했다. 그 결과 우리를 오보 집단으로 몰아가려던 불순한 시도는 좌절됐다. 그들의 온갖 불법 행위가 법원의 유죄 판결로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 TV조선은 2018년 4월14일 드루킹 여론 조작 의혹에 당시 김경수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이 기자가 사회부장 때다. 사진=TV조선 유튜브 화면

대법원은 지난 7월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공모한 혐의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게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 기자는 책에서 경공모 핵심 회원이 주요 자료를 자신에게 제공하며 1000만원 이상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한 사실 등 취재 뒷이야기도 밝혔다.

이 기자는 드루킹 보도 외에도 조국 사태 보도를 언급하며 “범죄 흔적을 덮고 진실을 호도하려는 결정적 시도들을 들춰내 고발했다”며 “우리는 정의로 가장한 위선의 실체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겨가며 사건의 본질에 한 발 한 발 다가갔다”면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그 현장에 우리는 어느덧 공정한 감시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시청률이 5%를 훌쩍 넘었다”고 자찬했다.

이 기자 책은 27년 노하우가 담긴 방송 취재·제작 매뉴얼이면서 TV조선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무리한 취재 시도와 정파적 보도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렀던 TV조선 보도에 대한 시민들 평가가 이 기자와 똑같을지는 확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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