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담합 면제 소급 안돼"..해운업계 "무리한 과징금"

이지훈/정의진 입력 2021. 10. 1. 17:41 수정 2021. 10. 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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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법 개정안 국회 논의
해운사 공동행위 규제 권한
해수부가 전담..공정법 배제 담겨
공정위 "담합에 면죄부 주면
제재근거 사라져 부메랑 될 것"
8천억 과징금 폭탄 해운업계
"불법 아닌데..경쟁력 생각해야"

국회가 해운법 개정을 통해 ‘해운사 구하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운업계의 악성 담합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해운법 개정안에는 과거 해운사 담합 행위의 공정거래법 적용을 면제해 주는 소급 적용까지 담겨 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담합 면죄부 안 된다”


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해운사의 담합(공동 행위)에 대한 규제 권한을 해양수산부가 전담하고,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적용례 부칙을 추가해 개정안을 소급 적용토록 했다. 이는 해운사 담합 행위 관련 제재 절차를 밟고 있는 공정위를 직접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국내외 선사 23곳이 한국-동남아시아 노선에서 담합행위를 했다는 판단에 따라 과징금 8000억원을 부과하는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담합한 매출 8조원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과징금 폭탄을 물게 된 해운업계는 해운사 공동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해운법 29조1항에서 선사 간 운임·선박 배치, 화물 적재, 그 밖의 운송 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논란의 핵심은 해운법이 허용하고 있는 공동 행위 범위를 넘어서는 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여부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운임 협의 과정에서 화주들의 반대로 가격 인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담합 행위에 나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운사들이 화주들을 배제하고 해운사끼리 운임을 올리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후 개별 회사 차원에서 운임 인상을 각 화주에 통보했다. 공동 행위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 공정위의 진단이다. 이 과정에서 “법대로 하는 게 꼭 바람직한 게 아니다. 몰래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 ‘동의’ 등의 단어를 다른 암호로 대체해 사용한 사실도 적발됐다. 가격 인상에 동의하지 않은 화주에는 선적 거부로 대응했다. 일부 해운사가 상호 협의한 것보다 낮은 운임을 적용하자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해운업계 공멸 위기”

공정위는 이 같은 담합 행위로 화주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가 전가됐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안을 소급 적용해 이번 담합 행위에 면죄부를 주면, 향후 발생하는 해운사들의 악성 담합에 대해서도 제재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며 “만약 해외 글로벌 선사들이 미주 노선 등에서 가격 담합에 나서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6명은 지난달 29일 해운법 개정안을 성토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임에도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담합 혐의를 받는 해운사들의 로비스트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도 “국회가 특정 기업의 담합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법까지 고쳐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해운업계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는 해운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공정위가 무리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겨우 반등에 성공한 해운산업이 도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해운사 공동 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해수부도 해운업계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해운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달라는 취지다. 원양선사인 HMM과 SM상선은 작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 전까지 HMM은 5년 연속, SM상선은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동남아 노선도 선복 과잉으로 운임이 하락하면서 수년 동안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선사가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공동 행위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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