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말미잘·해조류..해양생물은 바이오·IT '신기술 보고' [Science]

이종화 2021. 10. 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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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물 생체연구 통한 바이오·IT 신소재 개발
물속서도 잘붙는 홍합의 접착 단백질
인체 적용해 항암 면역치료제로 활용
외부 물질 붙기 어려운 해조류 표면
선박·해양 장비용 소재 개발 이어져
물에 안젖는 연잎과 홍합 접착력 결합
혈전방지·항박테리아 의료 기술로
실크와 유사한 단백질 가진 말미잘
인공생체조직용 3D프린팅 가능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심연'은 수심이 약 1만1033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8849m인 에베레스트산보다도 깊다. 이처럼 깊은 바다는 지상에서의 환경과 달라 항상 연구 대상이 돼 왔다. 실제로 최근엔 해양생물의 생체모사를 통해 새로운 소재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장기 접착 소재, 지혈 소재, 오염물을 막아주는 방오 소재 등 여러 소재가 해양생물로부터 개발되고 있다.

우선 연구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해양 생물은 홍합이다. 홍합은 강한 파도에도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는 접착력을 갖고 있다. 물에 노출된 상황에서도 접착력을 잃지 않는다. 이는 홍합이 갖고 있는 표면접착단백질 덕분이다. 성체가 되기 전 홍합은 붙어 있을 바위를 찾아다닌다. 최적의 바위를 발견하면 수십 개의 가는 족사를 이에 연결한다. 이 족사 끝에 있는 표면접착단백질은 액체로 돼 있다가 바위에 연결되면 단단하게 굳는다. 이 단백질은 족사마다 10㎏ 힘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수십 개의 족사가 연결되면 수백 ㎏ 무게에도 견딜 수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계에선 이런 홍합 성분을 모사해 혈액 내 성분을 빠르게 지혈할 수 있거나 무언가를 단단히 붙일 수 있는 접착 소재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왔다. 사람 몸속에는 수분이 많은 만큼 홍합의 표면접착단백질 성분은 바이오 분야에도 자주 응용된다.

최근 차형준 포항공과대(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홍합 단백질과 자석을 응용해 약물 전달 효과를 최대 5배 높인 소재 기술을 개발했다. 홍합접착단백질에 자기장 감응성을 부여해 접착성 마이크로 입자를 만들었다. 자기장 감응성은 외부 자기장에 반응해 자기장 방향으로 이동하는 성질이다. 이를 통해 유속이 빠른체내 통로기관에서도 약물을 국소적·장기적으로 병변 부위에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차 교수 연구팀은 이 연구 이전에 홍합을 바탕으로 국소 항암 면역치료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기술은 홍합 단백질을 약물에 섞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면역항암 치료는 체내 면역 세포가 암 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는데, 홍합의 표면접착단백질로 항체가 표적 암 세포에 붙어 있게 하는 일종의 약물 소재를 만들었다. 또 차 교수 연구팀은 홍합의 접착단백질을 사용해 방광에 생긴 누공을 효과적으로 꿰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누공이란 체내 기관 사이에 생기는 구멍을 뜻한다. 연구팀이 활용한 건 홍합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수중접착제' 소재다. 이 소재는 혈액, 소변과 같은 체액에서도 분해되지 않고 우수한 수중 접착력을 보인다. 연구팀은 돼지 모델 실험에서 고점도로 만든 수중접착제 소재를 누공 부위에 전달해 방광에 생긴 구멍을 막았다.

차 교수는 연잎을 연구하는 용기중 포스텍 교수와 손잡고 몸속에 넣을 수 있는 초발수성 소재 개발에도 성공했다. 우선 이 소재는 이슬에도 잎이 젖지 않는 연잎의 특성을 모사해 초발수 성능을 구현했다. 이후 내구성이 약한 측면을 홍합의 접착단백질을 통해 보완했다. 기존 접착 성분과 달리 독성도 없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건 혈전 형성 방지와 항박테리아 성능 때문이다. 혈관 안에 집어넣는 길고 가는 관인 '카테터'와 부착제인 '패치'에 적용한 결과 카테터에선 항혈전 특성이 발현됐으며 패치에선 항박테리아 성능이 나타났다.

홍합이 갖고 있는 접착 성분을 응용한 지혈 소재도 개발됐다. 이해신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홍합을 모사해 만든 의료용 지혈 소재로 혈액응고 장애 환자의 효과적인 지혈에 성공했다. 특히 이 교수 연구팀의 성과는 동물 실험이 아닌 임상 연구에서 성공한 만큼 더 의미가 크다. 연구팀이 간 절제 수술 후 1차적 지혈에도 발생하는 출혈 부위에 이 소재를 도포한 결과 우수한 지혈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지혈 소재에 의한 합병증도 관찰되지 않았다.

홍합이 아닌 바닷속 따개비를 모사해 만든 지혈 소재도 있다. 홍합과 마찬가지로 따개비는 물과 접촉하거나 붙어 있는 표면이 더러워도 암석 등에 잘 달라붙어 있다. 육현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부 박사 연구팀은 따개비를 모방해 빠르고 간편하게 지혈할 수 있는 소재를 최근 개발했다.

접착 성분과는 반대로 외부 물질이 들러붙지 못하는 해조류의 특성을 응용한 연구도 있다. 정훈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해조류를 모사한 방오 소재를 최근 개발했다. 방오 소재란 표면에 각종 오염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소재다. 연구팀은 매끈한 피막과 바늘 같은 돌기로 된 미세표면으로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들러붙지 못하는 해조류의 특성을 응용했다. 연구팀은 해조류와 같이 나노바늘을 촘촘하게 박은 표면에 피막을 입혀 소재를 개발했다. 이 방오 소재는 선박, 해양 장비, 가습기 등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닷속 말미잘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3D 프린터 소재로 응용될 수 있다. 뼈, 연골 등 사람 몸에 적용되는 생체 구조체를 3D 프린터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말미잘을 모사해 개발됐다. 조동우 포스텍 기계공학과 연구팀은 공동 연구를 통해 실크와 유사한 말미잘 단백질 소재를 바탕으로 원하는 형상의 인공 생체 구조체를 빠르고 정교하게 인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람 몸에 적용되는 3D 프린팅 소재는 생체 이식 후 조직과의 성공적인 융합이 필요해 그동안 개발이 어려웠다. 이 기술은 다양한 형상의 구조체를 인쇄할 수 있고 탄성력이 강하며 생체적합성이 우수하다. 향후 인공 생체 조직으로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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