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의 가장 큰 적은 '거대해진 금융권력'

강영운 입력 2021. 10. 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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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 / 니컬러스 ?嬋� 지음 / 김진원 옮김 / 부키 펴냄 / 2만 2000원
당신은 현명한 투자자다. 두 기업 중 투자처를 골라보자. 첫 번째 후보는 제조사 A기업. 직원은 5000명이고, 재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고용 시장과 사회 인프라스트럭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매출 대비 수익은 적다.

다음 후보는 보다 매력적이다. 투자 전문회사인 B기업. 직원은 50명에 불과하다. 막대한 대출을 받아 단기간에 10배의 수익을 뽑아낸다. 대부분의 수익은 불로소득인 부동산으로부터 나왔다. 고용효과가 적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미미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사회적 비용까지 초래한다. 그런데도 현명한(?) 투자자인 우리의 선택지는 언제나 B로 향한다. 금융 시장이 B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부의 흑역사'는 현대 금융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 니컬러스 ?슨은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부연구위원으로 세계적인 금융문제 전문가다. 그는 "과거 금융업이 산업 발전의 촉매였지만, 현재는 불평등의 불을 키우는 부싯돌이 됐다"고 주장한다. 금융 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불평등이 심해지며, 공공서비스가 와해된다는 경고장을 보낸다.

"영국은 아프리카 앙골라만큼 위험하다."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을 이어간다. 석유·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앙골라가 부(富)를 쌓기는커녕 가난과 분쟁 속에 허덕이는 '자원의 저주'에 빠졌듯이, 금융기관의 지나친 자산이 영국을 좀먹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른바 '금융의 저주'다.

1970년 이전 영국의 은행 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50%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약 다섯 배에 달한다. 금융자산의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는 북유럽 국가보다 낮고, 불평등은 심해졌다. 의료복지에서의 등수는 하강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금융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부문을 밀어내는 '둥지 속 뻐꾸기'에 가깝다."

금융 비대화는 혁신의 씨앗인 '기업가 정신'을 좀먹는다. 기업은 갈수록 수익을 새로운 투자에 쏟는 대신 자사주 환매에 우선순위를 둔다. 주식 가격이 오르는 가장 빠른 방법이어서다. 대주주의 재산도 늘고, 경영진의 스톡옵션 가치도 높아진다. '주주 친화 정책'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석유회사가 유전 굴착 장치를 구입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는 관행을 '월스트리트에 유전을 판다'고 한다"면서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의 혈관에 잔뜩 찔러 넣은 주사기"라고 비판했다.

금융투자는 사회의 뼈와 살을 깎아 먹는다. 일자리를 줄이고, 투자 없이 수익을 내는 회사에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우버는 자동차에 투자하지 않고,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다. 페이스북·구글은 언론인의 땀내 나는 취재를 착취한다. 대한민국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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