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땐 몰랐다..집짓기가 이렇게 웃음꽃 만발한 일일 줄은 [다른 삶]

이숙명 2021. 10. 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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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명의 '유유자적'

[경향신문]

2021년 나의 소망은 집공사도 끝나고 여행도 원활해져서 가족, 친구들과 집들이를 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쯤 먹고 마시고 수영도 하며 우울한 시기를 잘 견뎌낸 걸 다 함께 자축하고 싶었다. 그참에 집들이 선물로 살림도 장만하고. 그런데 2021년이 두 달 남은 지금, 한 가지 조건은 이뤄질 것 같은데 다른 하나가 문제다. 송년회 겸 집들이는 취소해야 할 것 같다.

당초 건축가가 넉 달 만에 짓겠다고 했던 집은 열 달째 접어드는 지금도 언제 완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9월 말 발리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하루 1000명이 넘던 7~8월에 비하면 놀라운 수치다. 올해 발리 인구는 432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약 60%(258만여명)가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다. 상황이 개선됨에 따라 발리 정부는 다시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이 첫 대상국이 될 거란 발표도 있었다. 아직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때 백신 접종자도 자가격리 면제가 안 되기 때문에 한국 관광객이 움직일 것 같진 않다. 그래도 1년 반 동안 여러 번 개방 계획이 취소되는 걸 보며 ‘그때 가봐야 알지’라는 비관론에 빠졌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기대를 품고 있다. 전 세계가 리오프닝을 준비하고 백신 보급률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2022년 G20 정상회의가 발리에서 열리기 때문에 주정부로선 어떻게든 개방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목표의식도 높다. 팬데믹 초기 동남아 의료, 행정, 방역에 대한 끔찍한 불신에 사로잡혀 음모론을 쏟아내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발리가 이렇게까지 버텨낸 게 감격스러워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반면 집공사 현장을 가보면 다른 의미로 눈앞이 흐려진다. 아, 내가 또 큰 삽질을 했구나.

10개월째 공사 중인 발리의 집
구조 서고 세부 작업 시작되면서
매일 챙겨야 할 일들도 늘어나
도면과 다른 구조물을 찾아내면
고치거나 참고 넘어가기의 연속
거실창 문틀 안팎이 바뀌었을 때
난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너무 황당하면 나오는 그 웃음
인부들도 다 같이 웃었다
‘이게 진짜일리가 없어’라는 웃음
올해 송년회는 인부들과 보낼 듯
어쩌면 내년 3월 ‘녜삐’까지도…
‘하하하…’ 또 웃음이 난다

건축가가 넉 달 만에 집을 짓겠다고 할 때 곧이곧대로 믿진 않았다. ‘에이 선심 써서 딱 두 배, 여덟 달만 걸려라’ 생각했다. 여덟 달이 지나자 그는 열 달을 얘기했다. 그리고 열 달째에 접어드는 지금, 내 집은 내벽 조적과 문틀 부착이 갓 끝난 상태다. 전기, 수도, 미장, 목공, 타일, 페인트 등 남은 작업이 많아서 연내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숨바에서 온 기초 작업 팀이 떠나고, 누사프니다 현지에서 인력을 모아 다시 팀을 구성하기까지 두 달 공백이 생긴 게 결정타였다. 나도 나지만 프로젝트당 돈을 받는 작업반장이 미칠 지경이다. 작업반장은 하산이라는 똑똑한 젊은이다. 그는 나보다 훨씬 간절히 이 공사를 끝내고 싶어한다.

어제는 남자친구가 한 인부에게 “언제 끝날 것 같아?”라고 물었는데 인부가 “일 년 후에”라고 농담을 했다. 옆에서 듣던 내가 “절대 안 돼!” 소리치자 인부가 껄껄 웃었다. 오늘은 남자친구가 하산에게 “일 년 후엔 끝나겠지?”라고 농담을 했다. 하산은 잠시 멈칫하더니 혼이 나간 얼굴로 “아니야, 아닐 거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있던 서너 명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거실 문틀은 안팎이 바뀌어 다시 달아야 했고, 아직 집의 형태를 채 갖추지 못했으며 창과 문은 높이가 제각각으로 강제 리듬감을 장착한 데다가 콘크리트는 기대 이상으로 튼튼해서 평탄화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요즘 현장을 볼 때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졌지?’ 복기한다. ‘하는 김에’ ‘하는 김에’ 하다가 방 한 칸이 두 칸 되고, 나무 천장이 콘크리트로 바뀌고, 테라스는 사방에 접이문이 달린 거실이 되고, 수영장까지 생겼다. 공사 도중 건축가가 거실과 수영장 사이 공간이 생각보다 깊어서 매립비가 많이 든다기에 “그럼 매립하지 말고 공간을 살려서 창고를 만들자” 했다가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가족이 몽땅 살아도 될 만한 지하실도 생겼다. 그렇게 눈덩이가 굴러 빙하가 되었다.

지난달까지 나는 공사장에 자주 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가 서고 세부 작업이 시작되면서 매일 챙길 것이 생겼다. 시작은 주방이었다. 벽돌로 싱크대를 만들었는데 오븐이 들어갈 자리가 좁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너비가 도면에 적힌 63㎝가 아니라 58㎝였다. 나는 이미 너비 60㎝짜리 오븐을 사두었기 때문에 수정을 요청했다.

어느 날은 거실 기둥 한 개가 바닥 공간보다 바깥으로 돌출된 걸 발견했다. 기둥 공사 중 마지막에 작업한 것이라 남은 콘크리트를 몽땅 쏟아부었다가 기둥이 너무 커진 모양이다. 다행히 철골이 들어간 부분은 바닥에 안착해 있었다. 기둥이 튀어나간 부분까지 바닥을 넓혀서 해결하기로 했다.

다음은 창문이었다. 팬트리와 화장실의 환기창이 있어야 할 부분에 인부들이 벽돌을 쌓고 있었다. 인부들이 도면을 평면만 보고 입면은 안 본 것이다. 결국 기껏 쌓은 벽을 잘라내고 창을 달기로 했다.

지하실은 건축가와 우리 사이에 소통이 잘못되는 바람에 사람이 설 수 없는 높이가 될 뻔했다. 인부들은 기껏 바닥에 채워 넣은 돌을 도로 빼내야 했다.

설계도상에는 욕실, 현관, 주방 창의 상단이 같은 높이인데 모두 제각각이 되기도 했다. 그건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콘크리트 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 팀 인부들이 콘크리트는 끝내주게 잘 만든다. 한 번 만들면 부수거나 갈아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 공간을 볼 때마다 줄맞춤 강박이 있는 디자이너 친구들이 떠오른다. 잡지를 오래 해서 좌우 지면의 글상자 크기가 0.1㎜ 다른 것도 귀신같이 잡아내는 사람들. 그 예민한 시각 때문에 현실에서 끝없이 고통받는 자들. 그들이 내 집에 놀러오면 좌불안석일 것이다.

어느 날은 창틀과 문틀이 약간씩 비뚤게 달린 걸 발견했다. 현장 수평계로 측정했을 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 수평계로 재면 1~2도씩 오차가 있었다. 나는 내 눈을 더 믿었다. 디자이너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편집 밥을 꽤나 먹었으니까. “나무 문틀은 원래 조금씩 틀어지기 때문에 괜찮다”는 건축회사 관계자에게 “그래요, 입주하고 석 달 만에 문짝 안 열린다고 수리 요청하게 만들지만 마세요”라고 정색하자 당장 새 수평계를 구해왔다. 1년 안에 발생하는 하자는 건축회사가 자재와 인력을 포함, 무상으로 수리한다는 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달린 문틀까지 수정을 요청하진 않았다. 다행히 나무라서 문짝을 달 때 잘 갈아내면 기능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이 역시 디자이너 친구들을 고통에 빠뜨리겠지만 나는 참고 살 수 있다. 그나마 거실 문틀까지 비뚤어지는 건 막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건 크기가 커서 약간만 비뚤어져도 문짝까지 문제가 번질 수 있다. 이튿날 다시 현장에 갔을 때 항상 비스듬히 담배를 물고 있는 가장 나이 많은 인부가 새로 단 거실 문틀을 보여주면서 “이번엔 제대로 수평을 맞췄다”고 자랑을 했다. 과연 기존 수평계를 이용한 보와 새 수평계를 이용한 창틀 사이에 길쭉한 삼각형 공간이 있었다. 인부는 그 유격을 메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뭘까, 이 ‘쌔한’ 기분은.

거실 창은 5m짜리 두 개, 3m짜리 두 개다. 꽤나 크고 무거운데 그걸 반나절 만에 뚝딱 설치하다니 이 사람들 손이 빠르긴 빠르구나 감탄했다. 아침 햇살에 전망도 좋고, 문틀도 예쁘게 붙었고, 미장한 벽들도 깔끔하니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흐뭇해하는 내 옆에서 남자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그는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힘들거나 황당하면 웃음밖에 안 날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웃음이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그는 문틀의 안팎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접이문이라서 문틀에 레일을 부착할 홈이 파여 있는데, 우리는 문을 밖으로 접을 계획이라 홈이 바깥 쪽을 향하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그게 안쪽을 보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문은 안쪽으로 열린다’라는 게 인도네시아 인부들의 상식임을 잊었다. 남자친구의 다이빙센터도 그렇게 해서 안쪽으로 열리는 빗물받이 창을 갖게 되었다. 인부들도 다 같이 웃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라는 웃음. 젊은 인부 한 명만 눈과 턱이 쏟아질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남자친구가 건축가와 통화하러 가자 나이 많은 인부가 허둥지둥 나에게 와서 “말 좀 잘해봐”라고 부탁했다. 순간 접이문이 꼭 바깥으로 열려야 하는가, 총 180도 16m 전경에다 앞에는 널찍한 데크까지 있는데 완전 개폐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핑계 김에 저렴한 미닫이문으로 바꾸면 어떨까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애초 거실에 큰 창이 달린 접이문을 두르는 건 남자친구의 소망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그가 유일하게 고집부린 부분이다. 내가 예산 때문에 접이문을 포기하려 하자 그는 발리 전역의 유리 가게를 찾아다니며 가격과 자재를 비교했다. PVC나 알루미늄이 아니라 목재 틀을 택한 것도 그로서는 큰 양보였다. 그나마도 그의 접이문 사랑을 애처롭게 여긴 건축가가 다른 대형 프로젝트의 목수에게 ‘하는 김에’ 자재 값만 받고 해달라고 부탁해서 해결된 일이었다. 남자친구는 이미 그 문에 대해 너무 오래, 깊이 생각했다. 아무도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이 많은 인부에게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인부들은 문틀을 떼어내고 다시 달았다.

본격 디테일 전쟁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올해 송년회는 인부들과 함께할 것 같다. 그들이 연말연시라고 공사를 중단하고 휴가를 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 우리는 내년 녀피(매년 3월 열리는 발리 힌두교 최대 명절)도 함께하게 되겠지. 이상하다. 인부들과 녀피를 보낼 생각을 하니 또 웃음이 난다. 하하하. 공사가 이렇게 웃음꽃이 만발하는 일인 줄 누가 알았으랴.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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