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英의학저널, '여성'이란 말 대신 '질을 가진 인체'로 썼다가..
영국의 저명한 의학 저널인 ‘란셋(Lancet)’은 지난 25일 발행한 표지에서 “역사적으로 의학계에서 질(膣)을 가진 인체(bodies with vaginas)에 대한 해부학이나 생리학적 연구가 무시됐다”는 표현을 썼다. 이 저널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여성(woman)’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남자(male)로 태어났지만 성(性)전환한 트렌스젠더들이나 질이 없는 다양한 성(性)소수자들도 ‘여성’으로 간주한다는 ‘포용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표현이 표지에 실리자, 많은 의사와 의학자들이 란셋에 항의했다. “여성(woman)을 ‘여성’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저널의 구독을 끊겠다” “홍등가에서조차 쓰기 부적절한 언어로 표지를 장식하는 저널에 어느 의학자가 논문을 제출하겠느냐” “여성과 어린 소녀를 비(非)인간화하는 용어”라는 반발이 대부분이었다. 영국의 한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번에 전립선을 다룰 때에는 왜 남성(man) 대신에 ‘전립선을 가진 인체’라는 표현을 안 썼느냐”고 이 저널의 성(性)에 대한 ‘이중적’ 포용성을 따졌다. 결국 란셋 편집인은 28일 ‘질을 가진 인체’라는 표현을 쓴 것을 사과했다.
이와 관련,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2일자)에서 “왜 여성(woman)이란 단어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람들이 ‘여성’이란 단어를 쓰기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에 대해 자신이 그간 배타적이었다는 ‘공감’과 더불어, 여론의 뭇매를 맞을까봐 갖는 ‘두려움’ 탓”이라고 분석했다. 잡지는 “젠더와 성에 대한 이 금기(禁忌)적 문화라는 것은 5년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실 지금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 문화를 어겼다고 온라인에서 몰매를 맞을까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영국의 한 병원은 ‘임신 여성’ 대신에 ‘출산하는 사람들(birthing people)’이란 표현을 쓰도록 권유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인 좌파 여성 정치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31)는 여성을 “월경(月經)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진보적인 미국의 시민자유연합(ACLU)도 지난 18일 ‘사람(people)’의 임신중절 권리를 강조했다. 젠더 행동주의자들은 많은 영어사전이 ‘우먼’을 ‘성인 여자(adult human female)’로 정의한 것에 대해서도, 남자가 여성이 될 가능성을 부정한다며 매우 불만이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의사나 직장 상사, 정치인들은 그동안 보편적으로 쓰던 단어를 버리고 최신 흐름을 좇는다고, 새롭고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단어를 쓰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며 “이는 오히려 환자와 직원, 유권자들에게 해(害)가 된다”고 경고했다. 또 지금의 성(性)중립적 용어라는 것도 ‘남성’에겐 ‘전립선 보유자’ ‘사정(射精)하는 사람’ ‘고환을 가진 인체’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여성들에게만 평생 사용한 ‘유용한 단어’를 포기하라고 주문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여성의 40%가 경부(經部‧cervix)라는 단어를 모르는데, ‘경부를 가진 사람들은 검사 약속을 하라’고 하면 뜻이 제대로 전달되겠느냐고 물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언어를 쓰는 이유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것인데, 익숙하지도 않고 외계어같은 용어를 고집하면 정작 여성과 소녀들의 삶에 진짜 악영향을 미치는 여성 성기(性器) 절제‧가정 폭력‧조혼(早婚)‧지속적인 남녀 임금 차와 같은 이슈를 심도있 게 다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폭력적인 남자 수감자가 자신은 여성이라며 여성 교도소로 이감을 원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여자 스포츠는 ‘선천적인 여자’에게만 허용할 것인지 등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엄청난 욕을 먹고 해를 당할까 위축돼 많은 사람이 토론에 참여하기조차 두려워한다고, 이 잡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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