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역사의 관찰자·참여자, 건축가 이성관(中)

효효 2021. 10. 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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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00] 4학년 2학기 '건축 윤강(輪講)-세미나' 수업. 건축가 이구(李玖·1931~2005)가 학생들에게 부여한 '36개의 그리드(격자)에 형태 구성' 과제를 평가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평면 격자 안에 다양한 방법으로 형태를 구성했다. 이구는 "수년째 강의하지만 '3×4=12 격자로 3개 층' '전체 36개 그리드를 지하에 구성'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느냐"고 지적했다.

건축가 이성관. / 사진 제공=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학교 수업의 대부분이 기존 건축물을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4학년이 되도록 자극이 없었던 터. 이성관은 설계 과목을 제외하고는 성적도 좋지 않았다. 문리대 중심으로 구성된 밴드에서 드럼을 맡기도 했다. 이구는 건축 설계를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하는 중에 꿈꾸듯 환상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구의 '건축 윤강' 수업은 이성관을 자극했다. 근본에서 시작하는 게 맞는다는 깨달음이 왔다. 이후 이성관의 건축 여정은 많이 달라진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손이기도 했던 이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이오 밍 페이(I M Pei)의 설계사무소에서 활동했다. 1966~1978년에는 미 8군과 일본 쪽 일을 주로 하던 건축 설계 회사 트랜스아시아(Trans Asian Consulting)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성관은 트랜스아시아에서 1년 일하고 유학 일환으로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미국 대학원은 학부 성적만으로 사정한다고 해 곧 정림건축에 입사했다. 1973년 외환은행 본점 건축을 기점으로 틀을 잡은 정림은 프로젝트 도면을 벽에 붙여놓고 김정철(1932~2010)과 김정식(1935~) 형제간 분임 토의를 하는 등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트랜스아시아에서는 선배인 고주석에게서 영향받은 바가 크다. 고주석은 이전 세대가 영감(靈感)을 중요시한 데서 벗어나 지금은 너무도 평범한 객관적·조직적 방법론으로 접근했다. 영어 원서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구와 고주석은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 옛 새문안교회 다섯 번째 모더니즘식 예배당(1972~2014)을 신축했다.

이성관은 1983년 8월 뒤늦은 유학을 떠났다. 대학원을 마친 뒤 뉴욕 HOK에서 이민자 출신인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Rafael Vinoly·1944~)와 한 팀을 이뤄 디자인 어시스턴트,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5만5000평 규모의 뉴올리언스 프로젝트 계획 설계를 담당했다. 1950년대 설립된 HOK는 당대에 지은 교회 건축이 좋아 보여 선택했다.

비록 뉴욕이지만 한국에서 실무 10년의 경력은 되레 현지에 영향을 주고 왔다고 자부한다. 6년여를 머문 뒤 집안의 2대 독자이기에 회사의 영주권 취득 제안 등을 물리치고 귀국해야 했다.

이성관의 건축관을 확실하게 한 사건이 일어난다. 1994년 전쟁기념관 준공을 마칠 즈음 우연히 마주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사진 한 장은 13평의 목조건물이었다. 학교 소사(수위)가 사는 규모였다. 창 하나만 내면 안성맞춤인 인간적인 크기였다. 처마 밑으로 건조대를 만들어 빨래줄에 빨래를 걸면 영락없는 사람 사는 여염집이었으나 실제로는 사형 집행장으로 쓰였다.

건축가 김석철(1943~2016)은 "건축가가 40대까지도 자기 스타일을 갖추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를 고민했다. 40대 초반에 들어선 이성관은 그동안 헛짓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순수예술은 에고에서 출발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근간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에 몰입해 있을 때 사형장 사진은 해법을 줬다.

자기만의 스타일은 독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착한, 악한, 권위적인 건축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고 봤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이는) 집은 중성적·중립적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숭실대 조만식기념관 & 웨스트민스터홀(2008년)은 숭실대 캠퍼스 내에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의 종합강의센터로 지어졌다.

'ㄱ'자형의 조만식기념관과 필로티를 도입한 박스형의 웨스트민스터홀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두 건물 사이 공간에는 목재 계단식 스탠드를 조성해 산자락에서 이어지는 경사지 지형을 자연스럽게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단과대 건물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학생들로 역동성을 띠고 있는 캠퍼스에 정적인 휴식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게 이성관의 설명이다.

기존에 산자락을 반듯하게 깎아 3층 높이로 세워진 옛 채플 건물이 서달산과 캠퍼스 간 단절을 초래했다. 스탠드를 둘러싼 두 건물 외부를 티타늄 합금 아연과 마천석으로, 스탠드를 목재로 마감한 것도 서달산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자연을 최대한 재현하기 위한 의도다. 산에서 이어지는 리듬감은 다시 웨스트민스터홀 하부의 필로티 공간을 통과해 중앙 광장으로 연결되면서 캠퍼스 내에 흐름을 부여해준다.

숭실대 웨스트민스터홀과 계단식 스탠드. / 사진 제공=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캠퍼스의 구심점이기도 한 중앙도서관 및 중앙광장과 접해 있는 웨스트민스터홀은 중앙광장과 마주하는 벽면 전체를 유리로 마감하고 이곳에 주계단실을 배치해 주 계단실로 오르내리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중앙광장에서도 시각적으로 교감하도록 개방성을 살렸다. 또 탁 트인 조망권으로 이곳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했다.

주택 '반포 577'(2009)은 버려진 도심 자투리 공간에 대한 창조적 해석으로 주목받는 작품이다. 서래마 맨 끝 서리풀공원에 맞닿은 삼각형 모양의 160㎡(약 48평)짜리 자투리 땅을 108평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건평은 25평에 불과하다.

반포 577. / 사진 제공=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무엇보다 효율성이 낮은 세모꼴 집인데도 평수에 비해 넓어 보인다. 가운데 중정을 둔 ㄷ자형의 설계로 건폐율이 높다. 이 집은 외벽과 맞닿은 벽면이 모두 비스듬한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는 평면이 삼각형이라 땅과 만나는 입면도 수직일 필요가 없다고 아예 발상을 전환했다.

언덕 위의 마지막 집이라는 한계점도 장점으로 바꿨다. 뒷산이 남쪽이고 산과 맞닿은 바로 아래 집이기에 이웃집이 모두 이 집을 바라보는 형국으로, 2·3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창을 내면 옆집에서 들여다보였다. 꼭 필요한 채광을 들일 정도로만 창을 내고 언덕과 맞닿는 면을 오픈했다.

반포 577 중정. / 사진 제공=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건폐율 규정을 피하기 위해 마치 사과 한입 베어 문 것처럼 가운데를 사다리꼴 형태로 파내 천장이 오픈된 중정을 만들었다. 대지가 작을 때는 마당과 집을 딱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 건물로 대지를 꽉 채우고 그 안에 마당을 들이면 마당은 프라이빗하면서 집 안에 빛과 바람, 자연을 들이는 산소통이 된다.

외벽이 폐쇄적인 느낌을 주지만 실내에서는 사면이 확 트인 개방감을 느끼게 된다. 3층짜리 이 주택은 각 층이 단절되지 않고 시각적으로 계속 이어진다. 필요한 벽을 최대한 없애고 시야를 확보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줬다. 이성관은 "틈이 저절로 창이 되며 빛을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주택 안에 들어서면 연속되는 반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층간 거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계단을 벽과 바닥으로부터 이격시켜 마치 경비행기 트랩처럼 디자인하고 컬러를 선별하는 등 각별히 신경 썼다.

반포 577 실내. / 사진 제공=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심플한 박스 형태, 징크(zink·부식되지 않는 철판 소재)와 노출 콘크리트, 페인팅 등 기본 마감재로 건축비를 절감했다. 그는 효율적인 설계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 "집을 지을 때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재료 선택부터 가구 세팅까지 전반적으로 고밀도로 하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이지요."

그는 건축비를 절감하는 것이 곧 에너지 절약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층고를 3.3m로 결정짓지만 사실 좀 더 낮춰도 된다는 것이다. 주택이 팔렸을 때 다른 사용자를 고려한 범용성도 고려했다. '반포 577'은 기능적으로는 징그러울 정도로 구석구석 디테일에 신경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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