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를 보면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
[경향신문]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지음·김한영 옮김|사이언스북스|864쪽|5만원
세계는 진보하고 있는가. 회의는 1960년대부터 고개를 들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확산됐다. 환경이든 인간성이든, 진보를 앞세워 그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태를 반대하는 지적 풍토는 점점 거세졌다. 한데 이 책의 지은이 스티븐 핑커는 이를 “낭만주의”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더 나은 미래보다 목가적인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런 흐름은 2010년대 들어 “대중운동” 형태로 확산됐다. 그것은 “좌우파의 경계를 넘나”든다. 우파에게는 “종교적 신앙” 혹은 “민족주의”로 표면화했으며, 좌파에게는 “인간의 이익을 초월적 존재인 생태계에 종속시키는, 낭만적인 녹색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핑커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가 내놓는 해법은 “계몽주의”, 즉 “지식이 인간의 번영을 증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는 1장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칸트의 1784년 에세이를 빌려 자답한다. “계몽은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권위에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모토는 ‘감히 알려고 하라!’이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그에 따르면 계몽은 무지와 낭만에서 벗어나려는 태도이며, 이는 진보를 추동한다.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은 “과학과 탐험”이 통념을 깨트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극을 받았다. 그들은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마음에 새기고 사상과 사람의 이동이 쉬워진 것에 고취”됐다. “사상이 풍요롭게 넘쳐 흘렀던 시대”에 계몽사상가들은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라는 네 주제를 하나로 묶어 ‘계몽’으로 수렴했다.
핑커는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4장은 “지식인은 진보를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칭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은 “진보를 싫어하면서도 진보의 결실은 싫어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말한다. “세계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지식인들에게 이미 오래전에 “구식이 되었다”며 지식인들을 거명한다. 니체와 쇼펜하우어로 시작해 하이데거, 아도르노, 베냐민, 마르쿠제, 사르트르, 파농, 사이드 등을 “진보에 관한 회의주의자”로 낙인찍는다.
저자는 보통사람들도 “세계의 상태가 이발소 간판 기둥의 줄무늬처럼 계속 아래로 침몰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 배경으로 뉴스를 지목한다. “전쟁, 테러, 범죄, 오염, 불평등, 약물 남용이 날마다 뉴스를 가득 채운다”며 수많은 뉴스가 “심각한 위기”라는 헤드라인으로 비관주의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비관주의적 지식인들”의 생각과 “저널리즘의 인지 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숫자”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실제로 책에는 “(그동안) 전 세계에서 삶, 건강, 안전, 평화, 지식, 행복이 증가”했음을 입증하려는 그래프가 숱하게 등장한다. 그중 하나는 1771년부터 2015년까지 기대수명의 향상을 보여준다. 유럽에서는 1860년대부터, 아프리카에서는 1910년대부터 급격한 우상향을 보인다. 1751년부터 2013년까지 5세 전에 사망한 유아의 비율도 점점 수치가 떨어져 이제는 ‘거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핑커는 건강뿐 아니라 식량과 부 등 거의 모든 것이 좋아졌음을 통계로 설득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불평등과 환경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무엇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악의 근원”이라 했던 불평등에 대해 핑커는 “오랫동안 좌파의 상징적 이슈”였으며, “2007년 대침체가 시작된 이후 크게 부상했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통계를 제시한다. “2009년과 2016년 사이 ‘불평등’이 들어간 ‘뉴욕타임스’ 기사가 10배 증가했다”고 부연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전 세계 지니계수 곡선은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환경 문제에 관해서도 “사실을 과학적으로 인정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녹색주의는 반쯤 종교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1970년대 녹색주의가 예언했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들이 일어날 리 없다고 여겼던 발전은 실현됐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과학만으로는 진보를 이뤄내기에 역부족”이라면서 ‘휴머니즘’을 언급한다. 그가 정의하는 휴머니즘은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휴머니즘과 결이 다르다. 핑커는 “휴머니즘을 사람들의 마음에 안착시키려 한다면, 이 시대의 언어와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인류의 번영-생명, 건강, 행복, 자유, 지식, 사랑, 풍부한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휴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은 “유신론적 도덕관과 대립”하는 것이며 “권위주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반동적 사고, 파시즘”과도 적대적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성, 과학, 휴머니즘, 진보’(책의 부제)를 ‘새로운 계몽주의’라는 개념으로 통합하면서 핑커가 극렬하게 비난하는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니체다. “냉정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과대망상에 빠진 소시오패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니체의 초인사상이 “낭만적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고취하는 데 일조”했으며, “니체는 사후에 나치의 궁정 철학자가 됐다”고 비난한다. 어쩌면 그는 헤겔과 노자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국가주의자’라고 단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럼에도 독설과 웅변이 뒤섞인 저자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인 핑커는 역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끝까지 남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삶’이고, 그것은 수백년 동안의 통계 수치로 치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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