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0'..은둔의 헬스 고수 '역기를 들며 삶의 무게를 버틴다' [포토다큐]

이준헌 기자 2021. 10. 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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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제시대 건물에 33년째 자리한 충북 괴산 ‘동양헬스클럽’

동양 헬스 클럽은 옛 괴산 군청이자 현 괴산읍 행정지원 센터 바로 앞에 있다. 일제강점기때 체육관을 목적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해방 후 산림조합, 의류 공장을 거쳐 다시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20=60’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거운 쇠를 가까이하고 찢어지는 듯한 근육통을 ‘잘 먹었다’고 표현한다. ‘헬스에 미친 사람(들)’을 뜻하는 속어로 불리는 이들은 헬스인들이다. 그들에게 20+20의 답은 20kg짜리 원판 2개와 이를 지탱하는 바벨 무게 20kg을 더한 60kg이다. 누군가 40이라 답한다면 이들은 “그럼 바벨은 조상님이 들어주냐?”라고 말한다. ‘중량이 우선이다’와 ‘횟수가 우선이다’로 투닥거리고 ‘견갑의 후인하강’을 강조하는 이런 헬스인들 사이에서 최근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헬스장으로 뜨는 곳이 있다.

한때 200명에 육박했던 회원수는 현재 그 절반 이하로 줄었다.


충북 괴산 읍내로에 있는 동양 헬스클럽은 외관부터 범상치 않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강호의 은둔 고수가 있을 것 같은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해방 이전 자료가 없어 정확한 완공 연도를 확인할 순 없었다. 다만 괴산 문화원 자료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에 4개뿐이던 조선인 역도팀 중 하나가 이 곳에서 운동했고, 그 조선인들이 돈을 모아 독립군 자금을 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관 입구엔 서른 살의 진광봉 관장 사진이 걸려있다.


최초 체육관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해방 후엔 산림조합으로 이용되다 의류 공장을 거쳐 다시 체육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 이곳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고수가 살고 있다. 올해로 만 64세인 진광봉 관장은 33년째 이곳을 운영 중이다. 그는 언제 운동을 시작했냐는 질문에 손을 허리춤까지 올리며 “이만할 때부터”라고 답했다. 어린 시절 육상부터 축구, 핸드볼, 역도까지 하지 않아본 운동이 없다고 했다. 그가 했던 모든 운동엔 웨이트 트레이닝이 동반됐었다. 그렇게 청소년 진광봉은 자연스럽게 보디빌딩에 입문하게 됐다.


서울에서 보디빌딩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던 진 관장은 30세 때 한 대회의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고향 괴산으로 돌아왔다. 많은 대회를 경험했고 최고의 몸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회에서 순위가 공공연히 ‘거래’되는 것을 보며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진 관장은 89년부터 현 위치에 있던 ‘괴산 체육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90년대 중반에 ‘동양 헬스클럽’으로 이름을 바꾸고 직접 관장을 해오고 있다.


동양 헬스클럽은 조금 낡았을 뿐 초라하지 않다. 운동 기구들의 연식은 대부분 30년을 넘겼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희귀 기구들이 가득하다. 가장 최근에 설치한 기구는 8년 전 그가 직접 제작한 턱걸이 기구다.


“신식 기구들은 편하게만 만들어 제대로 된 운동을 하기 힘들어요. 여기 있는 기구들은 오래됐을 뿐 운동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몇 해 전 한 제자가 전국체전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1 학생이 운동을 가르쳐 달라며 찾아와 그 친구를 가르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새로운 기구와 시설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방법과 자세,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해요”라는 그의 말에서 고수의 철학이 보였다.


헬스장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30대부터 산에 다녔다. 산에서 약초도 캐고 버섯도 구했다. 산이 허락하는 날엔 산삼도 얻었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산삼 하나를 팔아 러닝머신을 샀고, 산삼 하나를 더 팔아 기구를 만들었다. 얘기를 듣고 나니 그의 헬스장이 산삼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헬스장 회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인구수 약 8천 명 뿐인 괴산읍에 몇 해 전 세 곳의 신식 헬스장이 더 생겼다. 가뜩이나 어려워지는 상황에 코로나 19가 덮쳐왔다. 긴급지원이 필요한 업종임에도 진 관장의 헬스장은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33년째 이 헬스장을 다니고 있는 여러 회원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올겨울은 넘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지인들도 ‘이곳은 보전되어야 한다.’ 말하지만 현실적인 고통은 온전히 진 관장의 몫이다.


최근엔 이곳에서 카페를 하고 싶다며 ‘얼마면 넘길 거냐?’는 사람이 다녀갔다고 한다. 33년 세월을 견뎌온 고집이 ‘얼마’라는 단어 앞에 잠시 초라해지기도 했다. 진광봉 관장은 그런데도 버텨볼것이라고 말했다.

33년째 이 곳을 다니고 있는 백동훈 씨와 진광봉 관장이 옛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녹 묻은 아령을 정리하며 “환갑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역기들고 산 타며 이 몸을 유지하는데 못할 게 뭐 있겠나. 건강할 때까지는 해봐야지”라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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