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해협서 침몰 관부연락선 '곤론마루', 왜 은폐했나..78년만에 원인공개

허상천 2021. 10. 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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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한일해협에서 승객과 승무원 655명을 실고 침몰한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 사고는 왜 은폐됐을까.

이 사고는 1943년 10월 5일 일본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으로 운항하던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가 한일해협 한 가운데 에서 미군의 어뢰를 맞고 격침, 승객·승무원 등 655명 중 58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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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 허상천 기자 =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은 1일 ‘곤론마루’호 피해자의 호적에 첨부된 조선총독부의 지시 문건인 계발선전(啓發宣傳) 방침 공문을 발견, 처음 공개했다. 2021.10.01. (사진 = 한일문화연구소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허상천 기자 = 일제 강점기에 한일해협에서 승객과 승무원 655명을 실고 침몰한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 사고는 왜 은폐됐을까.

이 사고는 1943년 10월 5일 일본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으로 운항하던 관부연락선 ‘곤론마루’호가 한일해협 한 가운데 에서 미군의 어뢰를 맞고 격침, 승객·승무원 등 655명 중 583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생존자는 72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사건발생 78년이 지나도록 원인 규명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채 비밀로 봉인돼 사건 자체가 미궁에 빠졌었다.

당시 건조한지 6개월인 새 선박인 곤론마루는 총 톤수 7909t급(전장 43.4m, 전폭 18.2m), 최고속도 23.5노트로 운항하는 여객선으로, 전쟁 군수물을 실기도하고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등을 수송해 조선인들의 한이 맺힌 연락선이다.

이 선박 사고가 비밀에 붙여진 까닭이 사고 발생 78년만에 드러났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전 부산외국어대 교수)은 1일 ‘곤론마루’호 피해자의 호적에 첨부된 조선총독부의 지시 문건인 계발선전(啓發宣傳) 방침 공문을 발견, 처음 공개했다.

‘계발선전방침’은 ‘상부의 지시대로 이 사건(곤론마루 침몰)은 국위를 선양해야할 사항이므로, 즉 전쟁에 해가되지 않고 황군의 사기를 꺾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건은 곤론마루 승선자 유족인 김영자(80·통영)씨의 사고당시 숨진 부친 호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호적부 뒷면에 첨부된 ‘계발선전방침’ 공문이 처음 발견된 것이다.

[부산=뉴시스] 한일해협에서 미군 어뢰를 맞고 침몰한 곤론마루호. 사진은 일본 곤로마루호 피해자 유족들이 추모식행사때 당시 흑백사진을 컬러로 재생. 2012.10.01. (사진 = 한일문화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공문에는 '군사작전에 관해 비판하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 '이번 사고를 논하는 자는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위압적인 내용 등 4가지 주의사항을 엄수토록 명기됐다.

김 소장은 “곤론마루 사고에 대해 사고났다는 말자체를 하지말라는 지침을 내려 관공서 공직자들의 입을 막고 은폐함으로써 엄청난 사고가 세상이 알려질 수 없었다”며 “전쟁 후 일본인 사망자들은 보상을 받았으나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보상은 커녕 유족들이 사고 원인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당시 곤론마루는 1943년 10월 4일 오후 11시 5분에 시모노세키항에서 출항해 5일 오전 1시 15분 일본 후쿠오카시 무나카타(宗像) 오키노 섬(沖島)부근 10해리 해역에서 미국 잠수함 와후(SS238)가 쏜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미군은 이 배에 일본군 20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어뢰를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동경에서 일본군을 태우고 시모노세키항으로 운행하던 수송열차가 고장으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곤론마루는 민간인들과 경찰, 승무원을 태우고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게 출항했다가 어뢰 폭격을 당한 것이다.

한편 김 소장은 오는 5일 ‘곤론마루’호 침몰 78주년을 맞아 부산 온천천 세병교 인근에서 유족과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곤론마루’호 피해자 위령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 소장은 “이제는 ‘곤론마루’호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와 민간 단체가 나서 원인을 규명하고 원혼의 한을 풀어줘야 할 때”라며 “‘곤론마루’호 피해자 유족들도 피해사실을 적극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era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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