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성폭행으로 임신중지"..미 여성의원, '임신중지권 옹호' 눈물

박병수 2021. 10. 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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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출산했다면 복지 수혜자로 인생 끝났을 것"
"임신중지 금지는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에 뿌리" 주장도
보수에선 "아이 생명 구하는 것은 인종주의 아니다" 반박
미군 미주리 출신의 코리 부시 민주당 의원이 30일 하원의 ‘개혁 및 감시 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10대 시절 성폭행 뒤 낙태했던 경험을 밝히며 낙태권을 옹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흑인 여성 하원의원이 지난 9월 미국 텍사스주가 시행한 ‘임신중지 금지법’을 비판하며 “17살에 성폭행을 겪어 임신을 중지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 법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옹호한 것이다.

민주당 내 초선 의원들로 구성된 진보그룹의 일원인 코리 부시 의원(미주리주)은 30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의 ‘감독 및 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1994년 여름 17살 때 교회 여행을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임신중지를 선택했다. 그런 사실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고”고 말했다고 미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로들이 보도했다.

간호사이자 목회자인 부시 의원은 이날 간혹 감정이 복받치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17살 때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경험’과 이후 내려야 했던 ‘힘든 선택’에 대해 털어 놓아 주위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여행을 갔다가 세살 위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그는 머잖아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시 의원은 남성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큰 혼란과 수치스러움 속에서 번민하던 그는 결국 임신중지라는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 부시 의원은 “이제는 그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걸 안다. 낙태를 했거나 하게 될 모든 흑인 여성이 부끄러워할 일은 없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입법화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잘 대우받고 요구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프라밀라 자야팔 민주당 의원(워싱턴주)도 젊은 엄마 시절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의사와 상담한 끝에 임신중지를 선택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더 많은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출산을 다시 겪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불가피한 임신중지를 옹호했다. 바버라 리 민주당 의원(캘리포니아주)은 흑인 치어리더였던 고교 시절 임신 뒤 임신중지를 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임신중지를 위한 수술이 불법이어서 멕시코의 뒷골목에서 수술을 받았다.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은 수술을 받아 많이 숨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캣 캐맥(플로리다주) 의원은 “어머니가 첫 출산 뒤 심장마비를 겪고 나서 의사로부터 임신중지 권고를 받았으나 거부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기에 없었을 것”이라며 텍사스주의 조처를 옹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하원 청문회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된 뒤 의학적 응급상황을 빼고 임신중지를 금지한 텍사스주의 법률 시행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 갈등이 얼마나 더 첨예해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최근, <엔비시>(NBC)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54%가 임신중지 허용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과 교외 지역, 북동부 지역 주민들의 찬성이 높은 반면, 보수주의적인 복음주의 교회, 시골 지역, 남부지역 주민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엔 미국 사회 내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간 경제력 격차’란 불편한 현실이 존재한다. 부시 의원은 “당시 내가 아이를 낳았다면 내 인생은 무료음식 배급표와 복지 수혜에만 기대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무방비 상태의 10대 흑인 여성이 직면해야 했던 엄혹한 현실을 털어놓았다. 또다른 민주당 흑인 여성의원인 아야나 프레슬리(매사추세츠)도 임신중지 수술 금지가 “우리의 저소득 자매와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등 성소수자를 포함해 흑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언급하며 “임신중지 금지는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초청으로 청문회에 출석한 텍사스의 산부인과 전문의 인그리드 스코프는 낙태율이 “백인보다 흑인에게서 높다”면서도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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