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해서 프로행' 김서진..함께해서 '야구 거인' 될래요

김양희 2021. 10. 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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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인터뷰]['찐'한 인터뷰] 롯데 자이언츠 지명 17살 김서진
"9살때 야구 안 하면 평생 후회 판단"
홈스쿨링 하며 유튜브 등으로 배워
엄마 "좋아하니 자기 주도적 학습
입소문 나 MLB서도 테스트 시도
롯데서도 2년 전부터 눈여겨봐"
"이젠 선배들과 함께할 생각에 신나"
지난 13일 열린 2022 KBO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된 김서진이 ‘챌린지’(도전)라는 단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서진 가족 제공.

그의 17년 삶에서는 이름 뒤에 통상 따라붙는 ( )(괄호) 안이 항상 비어있었다. 그 흔한 ○○초·중·고도 없었다. ‘김서진’ 이름 석 자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괄호 안이 채워진 다른 아이들이 마냥 부럽기도 했다. 최근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속이 생겼다. 그는 괄호 안에 ‘롯데 자이언츠’ 한 자, 한 자 눌러 적으면서 한없이 뭉클해졌다. 독학으로 야구를 배운 탓인지 ‘선수’라는 호칭이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도 뜻밖의 프로 신인 지명에 “신나고 흥분되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김서진은 지난 13일 있던 2022 KBO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9라운드 84번으로 롯데에 지명됐다. “김서진의 야구는 도전입니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17살 프로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바이올린, 그리고 야구

김서진은 어릴 적부터 또래와 달리 홈스쿨링을 했다. 어린이집도, 초·중·고교도 다닌 적이 없다. 작년에 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학교에 다녔다면 지금 그는 고교 2학년이다. 김서진의 어머니인 임영주(47)씨는 “주변에 홈스쿨링을 하는 집이 많아서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의 3살 터울 동생도 지금 홈스쿨링을 한다. 김서진은 “부모님이 우리를 가르치면서 고생이 참 많으셨다”고 했다.

공동체 생활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이올린을 배워서 작은 지역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했다. 연말 봉사 활동이나 위문 공연도 다녔다. 그러다가 일요일마다 재미 삼아 했던 동네야구에 꽂혔다. 임씨는 “9살 때 아이가 ‘지금 야구 안 하면 나중에 정말 많이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진심이 느껴져서 그때 주변 리틀야구 팀을 알아봤다”고 했다. 3년간 활동했던 리틀야구는 오케스트라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임씨는 “서진이가 혼자서 외롭게 바이올린 연습을 하다가 야구팀에서는 훈련 중에 계속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좋았던 것 같다. 야구라도 없었다면 홈스쿨링이 참 무미건조했을 것 같다”고 돌아봤다.

나홀로 훈련 스케줄 짜기

리틀야구는 나이 제한(만 13살)이 있다. 야구를 계속하려면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야구는 인생의 과정일 뿐 목표가 아니”(임영주씨)라고 생각했기에 홈스쿨링을 하면서 1주일에 3차례 하루 2~3시간씩 개인 레슨장을 찾았다. 1주일에 2~3번씩은 트레이닝센터에서 기초체력을 길렀다.

훈련 스케쥴은 항상 김서진 스스로 짰다. 메이저리그 코치의 스프링캠프 지도나 강연, 각각의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여러 타격폼이나 송구 동작을 따라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타격법과 훈련 방법 등을 고민한 뒤 레슨 코치를 찾아갔다. 김서진은 “처음에는 코치님도 당황하고 놀라는 눈치였다. 혼자 연습할 때는 유튜브를 통해 궁금증을 풀었는데 이제 프로에 입단하면 바로바로 코치님께 여쭤볼 수 있다”면서 좋아했다.

야구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많이 봐야 했던 터라 영어를 비롯해 스페인어, 중국어 언어 공부도 독학했다. 임씨는 “좋아하는 야구를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설계해나가더라”고 했다. 끈기와 성실은 김서진의 최대 무기. 그는 “내 장점은 이해력이 빠르다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서진이 타격 연습을 하는 모습. 김서진 가족 제공

코로나19로 좌절된 미국 도전

중학교 2학년 시기에 김서진의 투구 속도는 랩소도(투구 측정 기계)에 시속 134㎞가 찍혔다. 그의 숨은 실력이 입소문이 나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은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임씨는 “미국 스카우트가 영상 등을 찍어가고 데이터도 기록하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줬다. 중학교 3학년 시기에 체격(키 175㎝/몸무게 80㎏) 등을 고려해 타격에 집중하기로 했고 유격수 훈련을 시작했다”면서 “미국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연기가 됐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엘리트 야구 시스템 밖에서 ‘나 홀로 야구’를 하는 것은 국내에서 아주 드문 사례다. 학교 야구부에 속하지 않았던 이가 프로 지명을 받은 사례도 2019년 한선태(27·LG 트윈스)가 유일했다. 한선태는 사회인야구, 일본 독립리그 경기 출전 기록이라도 있었지만 김서진은 기록 자체가 아예 없다. 한때 독립리그팀(빠따형 야구단)에 속하기도 했으나 나이가 어려 실전 경기에는 뛰지 못했다. 경기 경험이 리틀야구와 팀 청백전이 전부다. 지난 8월 말 국내 트라이아웃 참가도 그래서 더 어려웠다. ‘무소속’ 17살 소년의 치기 어린 도전으로 비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거절당한 끝에 겨우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그는 ‘야구 선수 김서진’을 각 구단에 알렸다.

김서진은 고교 2학년 나이로 프로에 합류해 훈련을 받게 된다. 김서진 가족 제공

야구 이방인의 낯선 도전

성민규 롯데 단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서진을 지명한 이유에 대해 “2년 전부터 봐온 선수였다. 야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서 기본기나 경기 감각은 떨어지겠지만 또래보다 순발력, 파워, 센스 등 운동신경은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서진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으로 보고 긴 안목으로 미래 투자를 한 셈이다.

최근 구단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프로 유니폼 치수까지 잰 김서진은 그저 신났다. 지금도 지명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 맞다. 나 (프로) 지명됐지”라고 되뇐다. 더불어 프로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고 ‘함께’ 싸울 그 날을 기대한다. 그동안 혼자 훈련하면서 외로움도 많이 탔던 터다. 부모가 모두 부산 출신인 김서진은 “며칠 전까지 롯데 팬으로 롯데가 항상 이기기를 원했다. 이젠 롯데가 항상 이길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야구장 그라운드마저 낯선 ‘야구 이방인’은 수많은 물음표를 안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 느낌표는 물론 또 다른 희망의 길이 될 터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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