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나쁜 놈'과 '정치인'

2021. 10. 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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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필자는 2018년에 세종시교육감에 출마한 적이 있다. 그 해 어느 날 아내가 책을 한 권 사 가지고 와서 읽어 보라고 던져주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 책 선물을 좋아하고, 시집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아도 모두 읽고 서가에 꽂아 놓는 습관이 있어서 보내주는 시집은 거의 다 읽는 편이다. 아내가 사다 준 책 제목이 수상했다. <나쁜 남자가 당선된다>(석수경 외 2인, 글통 간행)는 제목이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나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거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제목치고는 황당했다. 내용은 다른 선거 관련 서적과 비슷했다. 그 책을 받아 들고 읽어보기는 했지만 책 제목이 항상 머리를 때렸다. “나보고 나쁜 남자가 되라는 말인가?” 하기야 필자가 조금 착하기(?)는 하다.

필자가 즐겨 읽는 책 중의 하나가 <계림유사>라는 책이다. 송나라의 손목(孫穆)이라는 사람이 1103년 고려에 사신을 수행하고 왔다가 당시 고려의 조제, 풍토 등 약 360개의 어휘를 채록하여 정리한 책이다. 예를 들면 “天曰 漢捺(天하늘)을 ‘ᄒᆞ날’이라고 한다)”와 같이 서술해 놓은 것으로 우리말 고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공부하기 좋다. 다만 현대의 발음이 아니고 북송시대의 발음이라는 것과 고려어도 개성의 방언이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음성학에도 조예(造詣 : 학문이나 지식에 경험이 깊은 경지에 이른 정도)가 깊어야 한다. 아무튼 그 책에 보면 “高曰 那奔(‘높다’는 ‘나쁜’이라고 한다.)”이라는 문장이 있다. 필자의 눈에 확 들어오기에 적당한 글이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높은 사람’을 ‘나쁜 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원래 ‘놈’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던 말이라는 것은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의 뜻을 쉽게 펴지 못하는 놈이 많다.”라고 했다. 여기서 ‘놈(者)’은 그냥 ‘사람’을 지칭하는 말인데, 요즘에 와서는 낮춤말로 변한 단어다. 말의 의미는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 어휘연구의 기본이다. 그러니까 예전에도 고관(高官 : 나쁜 놈)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백성들의 고혈을 짰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의미가 정말로 ‘나쁘다(bad)’의 의미로 바뀌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데’라는 말도 원래는 스페인어로 고관(高官, 백작=conde)을 이르는 말이었다. 백작들이 서민들을 못살게구니까 우리나라에 와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혹은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고, 어미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꼰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나쁜 놈’의 어원과 ‘꼰대’의 어원이 어찌 이리 비슷할 수 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현대어에서 ‘정치인’이라는 말은 많이 하는데 왜 정치가라고는 하지 않을까? 원래 ‘가(家)’라는 접미사는 전문가에게만 붙이는 말이다. 문학가, 화가, 예술가, 건축가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문가에게 붙이는 것인데, 정치인은 전문가가 없다는 말인가? 하기야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때도 있었다. 과거에 돈 좀 있으면 ‘막걸리’ 몇 잔 대접하고, 고무신 한 켤레 사 주고 표를 샀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라고 했다. 지금은 전문가들이 많이 나서기는 하지만 아직도 정치가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정치인일 뿐이다. 요즘은 가짜 뉴스도 많고, 유튜브도 활성화되어 있어서 미디어의 전성시대가 아닌가 한다. 전문적인 정치가보다는 언론에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많이 알리는 사람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금은 나쁜 남자가 당선되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어찌 그리 비리가 많은데 저기까지 올라갔나 싶기도 하고, 장관을 만들려면 중학교 시절부터 남들과 다르게 모범생으로 키워야 하는가 보다.
내친 김에 독자들에게 숙제나 내고 마무리하기로 하자.
어째서 시인에게는 ‘가(家)’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까? 화가는 전문가인데, 시인은 전문가가 아닌가? 그냥 ‘시가(詩家)’라고 하면?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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