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탓하는 경찰, 깊어가는 불신

오홍석 기자 2021. 10. 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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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눈치 보기' 비판에도 권한 확대 요구에 급급

● 초동 수사 미흡해도 제도 한계 탓
● 사고 터지자 연이어 “면책 규정 필요”
● 전문가 “면책 규정은 영장주의 무색케 해”
● 민주노총 집회, 이용구 사건…“권력 눈치 보기”
● 새 ‘음주 단속기’ 도입했다더니 경찰 음주 비위는 폭증
● 경찰 “면책 규정은 범죄 예방 위해 필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7월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최근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처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작 경찰은 '법적·제도적 한계'를 내세워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집회와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대처를 두고 경찰의 '정권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강윤성(56)은 8월 26일 자신의 자택에서 노래방에서 만난 40대 여성을 살해했다. 그는 범행 이후 집 앞 철물점에서 구입해 놓은 공업용 절단기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 전자발찌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한 법무부는 경찰에 소재 파악을 요청했고, 경찰은 당일 강씨의 자택을 세 차례, 이튿날 두 차례 방문했지만 강씨의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38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강씨는 포위망이 좁혀오자 송파서를 찾아 자수했다. 차 안에는 이미 두 번째 피해자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초동 대처의 문제점보다는 법적·제도적 한계를 탓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8월 30일 유족에게 유감을 표하면서도 "현장 경찰관들이 좀 더 적극적인 경찰권 행사를 하지 못해 아쉽다"며 "(경찰이) 주거지 안에 들어가지 못한 데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9월 6일 김창룡 경찰청장도 "경찰은 검거에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진행했다"며 "경찰의 초동 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에 면책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 경찰관이 주거침입죄와 재물손괴죄 등으로 고발될 위험이 있어 적극 수사가 어려우니, 긴급한 상황에서는 영장 없이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초동 대처 미흡 지적에도 권한 강화 요구한 경찰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이 9월 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경찰의 초동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은 올해 초 국민적 분노를 자아낸 '정인이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경찰은 어린이집 교사, 차량에 방치된 아이를 본 행인, 정인 양을 진찰한 소아과 의사까지 세 차례에 걸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부모 말만 믿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번 '전자발찌 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하게 정인이 사건 부실 수사 논란 당시에도 김 청장은 1월 1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앞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민생 치안 강화'를 약속했다. 당시 경찰청은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양천경찰서장을 포함해 12명을 징계했다.

당시에도 경찰은 사과문 발표에 앞서 규정 신설을 주장했다. 1월 5일 경찰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관련 법·제도적 필요 조치 검토'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경찰관의 직무활동에 관하여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형사상 감면할 수 있는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흡한 초동 대처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도 권한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권한이 없어 일을 못 했다"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사건 발생을 기화로 경찰에 유리한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의 주장은) 과잉 입법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범죄자이건 범죄 예상자이건 경찰이 압수수색을 위해 무작정 주거지에 들어가는 것은 인권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며 "경찰의 영장 없이 집 안을 수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는 요구는 헌법이 명시하는 영장주의를 무색게 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장 예외주의를 법으로 명문화해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예외 범위가 점차 확대되기 마련"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범죄가 일어난 뒤의 수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찰 본 업무는 방범과 치안 유지"라며 "입법을 통해 사후 대처인 수사권을 강화하기보다는 예방에 방점을 두고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발찌를 개선해 충격이 가해지면 보호감찰관에게 알림이 울려 일선 경찰관이 바로 출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하고 현행 형사소송법(200조3항)만으로도 충분히 전과자의 주거지 수색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민주노총과 자영업자 집회를 보는 눈

일각에서는 경찰의 '정권 눈치 보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찰권을 강화하는 입법에 여론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의 '정권 눈치 보기'의 대표적 사례로 이용구 전 법무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꼽힌다. 지난해 11월 16일 경찰은 승객이 목을 졸랐다는 택시 운전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피의자인 이 변호사가 (법무부 차관 등) 정부 핵심 인사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내사 종결했다. 당시 서초서 측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았고 이 차관에 대해 직업이 변호사인 사실만 알고 있었다"고 발표했으나, 검찰 수사에서 서초서 간부들의 휴대전화 메시지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 발표는 거짓말이 됐다. 정부 인사로 임명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걸로 드러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봐주기 논란도 경찰의 권력 눈치 보기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세계 노동절 대회'(5월 1일), '택배 상경 투쟁'(6월 15일), '재해노동자 합동 추모제'(6월 19일) 등을 각각 서울 도심에서 진행했고, 7월 3일에는 조합원 8000여 명이 서울 종로 거리 일대에서 '7·3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또한, 8월 23일 조합원 1500여 명은 충남 당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를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민주노총 집회를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예고했지만 통제센터 인근에서 열리는 집회에 대해서는 노사 자율 교섭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찰의 '민주노총 봐주기 논란'에 더욱 불을 지핀 사건이 최근 자영업자 차량 시위였다. 민주노총 집회와는 사뭇 다른 대처에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례로 9월 8일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서울 합정동에서 출발해 여의도로 집결하면서 영업시간·인원 제한 규정 폐지를 요구하는 차량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여의도에 임시검문소를 25곳 설치하고 일일이 차량 검문에 나서 집회 참가자들을 회차시켰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경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9월 8일 자영업자 시위 현장을 찾아 경찰의 조치에 대해 "민주노총 8000명이 모인 곳(7·3 노동자대회)에선 도로를 터주고, 비호하면서 최소한의 평화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왜 탄합하느냐"며 비판했다. 8월 6일 국민의힘 소상공인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승재 의원은 "민주노총이나 다른 노동자들처럼 과격한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1인 차량 시위 방식으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합법적인 선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월 9일 정부 방역지침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경찰 내부에서도 기강 해이 지적"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의 한 경찰 간부는 "각종 집회의 대처 방식이나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폭행 사건 등으로 경찰이 정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아픈 대목"이라며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이 너무 (정권의) 심기를 헤아리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찰의 음주 운전 등 기강 해이 문제가 불거진 것도 경찰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경찰 음주 비위 발생 건수는 98건으로 지난해 하반기 68건에 비해 30건(44.1%)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음주 비위 건수는 2019년 하반기 100건, 2020년 상반기 89건, 하반기 68건으로 감소 추세였다가 올 상반기 들어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경찰은 내부 감찰 인력을 대거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이러한 모습에 시민들은 불안해하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서모(26) 씨는 "(경찰의) 민주노총 집회와 달리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려고 거리로 나온 자영업자 집회는 적극 차단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모습)으로 느껴진다"며 "최근에는 새로운 '음주운전 복합 감지기'를 도입했다는 경찰이 오히려 음주 비위가 폭증했다는 사실에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집회·시위 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경찰은 모든 집회에 대해 사전 대응을 최우선시하며 동일한 기준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민주노총 집회의 경우 서울 주요 도심을 봉쇄하면 조합원들이 내부 연락망을 통해 흩어진 다음 불시에 산발적으로 집회를 벌여 일일이 대응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국민들이 경찰의 법 집행이 일관되지 않다는 생각에 신뢰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러한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경찰의 면책 규정은 일선 경찰관의 적극적인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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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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