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재, 못생김도 연기합니다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1. 10. 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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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이정재, 사진제공=넷플릭스

'멋있게 나이 든다'는 말이 뭔지 실감하게 만드는 배우다. 눈가의 주름마저 기품있고, 망가져도 매력적이다. 그렇게 이정재는 '멋진 오빠'에서 '멋진 배우'로 30년 째 멋짐을 거듭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제 그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만인의 배우까지 됐다. 그가 주연으로 활약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연출ㆍ각본 황동혁)이 현재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 미국 MZ세대들은 이정재를 따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심취해 있고, 그가 줄곧 입고 등장한 초록색 트레이닝복까지 따라 입고 있다.  

한국 컨텐츠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정재는 게임에 참가해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기훈 역을 맡아 휴머니즘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이렇게까지 망가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기 열정을 불사하며 다시금 배우로서 그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두 부류로 나뉜다. 일명 한 우물을 아주 깊게 파는 '전문 배우'와, 작품마다 매 작품  완전히 새 얼굴로 등장하는 배우다. 두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대중들은 후자 쪽에 열광할 때가 더 많다. 이정재는 후자에 속하는 배우다. '오징어 게임'을 생각하며 이정재의 전작을 찾아본 해외 팬들이 그에게 더욱 열광한 부분도 이것이다. 지질함의 정석과도 같았던 기훈의 친근함에 마음 편하게 다가갔다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나 '관상' 속 치명적인 모습을 보고 치였다고들 말한다. 훤칠하니 잘생긴 얼굴로 못생김까지 연기하는 경지다.

"'오징어 게임'에서 확실히 오징어가 됐죠. 모자가 너무 안 어울린다는 말도 있고 '왜 하필 저 모자를 썼냐' '좀 깔끔하게 쓰지 왜 저렇게 썼냐' '옷은 또 왜 그렇냐' 등 주변에 말들이 많았어요. '신세계' '사바하' ' 암살' '헌트' 때부터 같이 일해온 실장님이 스타일링을 했는데 저에게 뭘 어떻게 입혀야 진짜 쌍문동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의상을 입으러 갔을 때 저도 '왜 저렇게 위아래를 매치해 입지?' 할 정도의 컨셉트였죠. '오징어 게임'을 감상하면서 '아니 내가 저렇게 연기했었나?'라는 신선함에 많이 웃으면서 봤어요. 그런데 이런 저의 모습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있어서 얼떨떨 해요. 지금 촬영 중이라 사실 인기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징어 게임'은 데스매치 장르물이다. 눈과 귀가 가려진 채 납치되듯 게임장으로 초대된 456명이 고립된 공간에서 상금 456억을 두고 총 6개의 게임을 치른다. 게임에 패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사살된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게임이기에,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 앞에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 긴박감을 비롯해 비정함, 따뜻함, 정의감, 회의감 등 인간이 품은 모든 감정들이 발현된다. 그래서 단순히 데스매치 장르의 자극적 재미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현실 사회를 풍자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목숨을 담보해 벌이는 게임이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오징어 게임 등 어린 아이들의 게임이란 점도 세태에 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찍었을 때예요. 456명이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게임을 하다 보니 군무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묘했죠.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을 보면서 목숨을 건 달리기를 한다는 게 참. 첫 촬영 때부터 '아 이거 시사하는 바가 있겠구나'를 느꼈어요. 그냥 데스매치 장르물이 아닌 우리가 왜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가에 대한 이유가 촬영하면서부터 확 다가왔어요. 어른들이 목숨 걸고 하는 게임이 어린 아이들 놀이라는 설정 자체도 유니크하게 느껴졌죠."

이정재, 사진제공=넷플릭스

이정재가 연기한 기훈은 사업에 실패해 아내와 이혼하고, 사채를 써 업자들에게 시달리고, 도박장을 전전하며 사는 인생의 낙오자로 그려진다. 돈이 없어 하나뿐인 딸에게 그럴듯한 생일선물조차도 해주지 못하는 처지다. 게임에 참여한 나머지 455명의 참가자들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이 게임은 벼랑 끝에서 마주한 마지막 기회다. 게임하다 죽는 게 오히려 낫게다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게임을 취소할 수 있는 룰이 있다. 첫 번째 게임이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많은 사람이 사살된 것을 본 참가자들은 뜻을 모아 자유를 찾는다. 기훈도 게임 취소에 찬성했던 참가자다. 하지만 기훈은 생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또 한번 마주하곤 제 발로 게임장으로 돌아간다.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기훈이도 직장을 다닐 때는 이 게임에 참가할 정도로 형편이 나빠질지 몰랐을 테니까요. 결국 '오징어 게임'이 의미하는 건 '저 456억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보다 '게임을 치르게 되는 상황이 되지 말아야지' 같아요. 저 역시 기훈을 연기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갖게 됐어요."

기훈은 데스매치에서 최후의 2인까지 살아남는다. 대다수 참가자들과 달리 그의 생존 방식은 이기심으로 얼룩진 배반이나 잔꾀가 아닌, 배려와 화합 그리고 측은지심과 같은 인류애적인 것들이었다.  충격적 사건으로 최후의 2인이 되었을 때 돌연 게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행동 역시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가치를 일깨우며 묵직한 메시지를 건넸다.

"상우(박해수)는 기훈과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잖아요. 누구나 친분 속에서 서운함을 겪을 수 있고,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잖아요. 상우에게 분노했던 것도 있지만 이런 감정이 더 컸던 거죠. 그래서 기훈의 선택을 전 이해해요. 기훈에게 있어선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정인 것 같아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정재는 늘 작품마다 얼굴을 달리하는 배우다. 그는 작품에 따라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살의 가득한 카리스마 킬러가 되기도 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며 대중은 자연스레 차기작에 기대감을 갖는다.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차기작을 결정할 때 항상 전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데 주안점을 뒀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아마 제 작품을 눈여겨보신 분들이라면 이런 노력을 보셨을 거예요. 이 방식이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제 스스로도 알아서 연구하고 탐구하게 되는 흥미로운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요. 그 과정에서 늘 노력하고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다음 작품 할 때는 안해봤던 방식을 하려 하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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