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무엇이 되도 좋으니 살아 있으라"
#206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겨울날 나는 육군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내가 자대 배치를 받은 부대는 마침 야전훈련 중이어서 부대는 텅 비어 있었다. 부대를 지키고 있던 행정병 몇이 기차역에서 우리를 인수해 군용 트럭에 싣고 부대로 들어갔다.
군기를 잡기 위해서였을까. 뜻 모를 구타와 욕설이 이어졌고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에 시달렸다. 공포감의 근원은 '시간'이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자유를 빼앗긴 채 3년 가까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암담했다.
행정병들은 우리를 딱딱한 나무 침상에 몇 시간씩 앉혀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흐릿한 전등 아래서 추위와 싸우며 나는 내가 배워온 모든 정신적 능력을 동원해 육체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까. 교대해 들어온 행정병이 우리를 행정반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뜻밖에 호의를 베푸는 것 아닌가.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집에 짤막하게 전화 한 통씩 해라."
전화기를 들고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놀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늘 방에 누워계시던 병중의 어머니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학히 말하면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머니, 저예요." 이게 전부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어머니는 마치 주술이나 계시처럼 이렇게 말하셨다.
"살아 있어라. 어디 가서 뭐가 되든 살아 있어라. 무조건 살아만 있어라."
시간이 좀 흘렀을 때 어머니가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간 아들에게 이다지도 비장한 말을 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어머니는 일제와 전쟁을 겪은 세대였다. 끔찍한 이별과 죽음이 매일매일 눈앞에 펼쳐진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징용이나 전쟁에 끌려가 부고로 돌아온 집안 남자들의 얼굴이 어머니의 기억에는 생생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을 살았던 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살아 있는 것이었다.
살아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얼굴을 볼 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만질 수도, 원망을 할 수도 없으므로….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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