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자디에서 결승골' 이천수 "악몽 끊을 기회..경기장 이름은 잊어라"

안영준 기자 2021. 10. 1.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버스 타고 들어갈 때부터 감옥 같아
'원정 팀 지옥'이란 이미지에 위축돼
이천수가 아자디 원정을 앞둔 벤투호를 위해 입을 열었다.©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한국 축구사에서 유일하게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아자디 스타디움(이하 아자디)에서 결승골을 넣은 경험을 가진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이 이란 원정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을 위해 조언을 전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10월 7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시리아를 상대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을 치르고 12일 아자디에서 이란과의 A조 4차전을 갖는다.

이란과 경기할 테헤란의 아자디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다. 한국 A대표팀은 이 경기장에서 이란 대표팀을 7번 만나 2무5패,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3골을 넣고 10골을 내줬다. 최근 3경기는 모두 0-1로 무기력하게 졌다.

올림픽 대표팀 간 대결에서는 딱 한 번 승리가 있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이미 '원정 팀 무덤'으로 악명을 쌓던 2004년 3월,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던 U-23대표팀이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이란을 1-0으로 이겼다. 그때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이천수 위원장이다.

이천수 위원장은 뉴스1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자디 원정이 유독 어려운 이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점들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아자디에서 뛰었던 순간을 떠올려달라는 말에 "규모, 위치, 구조 자체가 홈팀에게 크게 유리한 경기장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힘들고 불편한 곳"이라며 혀부터 내둘렀다.

그러면서 "지금은 아니겠지만 예전엔 관중석에 의자도 없었다. 8만5000석이라는데 촘촘히 붙어 앉고 담 넘어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라서 그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차더라. 그 관중이 다 남자였다"고 회상했다.

이 위원장은 "팀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하면 지하처럼 된 구조의 건물로 스윽 내려가는데 꼭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며 "솔직히 말하면 심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아자디 스타디움 © News1 박정호 기자

이천수 위원장은 한국 축구가 아자디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나름의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앞서 말한 경기장 환경도 영향을 미치지만, 요즘엔 '여기가 아자디'라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축구를 괴롭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결과를 내지 못하면서 '아자디 악몽'을 거듭 의식하게 되고, 그것이 선수들에게 더욱 큰 부담과 긴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다들 아자디가 힘들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동안 결과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선수들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실력이 100% 발휘가 안 된다"고 짚은 뒤 "이란이 기본적으로 실력이 낮은 팀도 아니다보니, 우리가 먼저 위축돼 있으면 이기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이란은 우리가 제대로 못하는 게 다 보이니 더 신나서 싸움을 건다"고 말했다.

그는 공한증을 예시로 들었다. "중국은 한국만 만나면 움츠러든다. 뛰다 보면 그게 느껴졌다. 중국이 워낙 공한증을 의식하니 우리는 지고 있어도 역전할 것 같았다. 똑같은 맥락"이라며 직접 느꼈던 경험도 빗댔다.

이천수는 "이제 더는 그 기세에 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마침 긍정적인 배경도 마련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란은 최근 8만5000석의 아자디 관중석 중 1000석만을 제한해 입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더해 남성 관중만 입장하던 특유의 문화도 바뀌었다. 예전처럼 악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그 넓은 경기장에 1000명 들어오면 티도 안 난다. 큰 규모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란 수비수를 뚫고 슈팅을 시도하는 손흥민 © News1 박세연 기자

이천수 위원장은 승리를 위한 해결책도 제시했다. 벤투호에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이 많다는 점을 꼽으며, 속도를 앞세우면 이란을 흔들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예전부터 아시아에서 한국보다 빠른 팀은 많지 않았다. 이란은 피지컬과 힘이 좋아서 빠르게 뛰려는 우리 선수들을 몸으로 막아 버렸다. 그래서 스피드를 활용 못했다"고 양국의 특징들부터 짚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튼), 이동준(울산) 등 기본적인 스피드에 돌파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은 평소 이란보다 더 강한 팀도 다 뚫어 왔다. 일대일 싸움에서 하나둘 이기기 시작하면 이란 선수들도 예전처럼 자신감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돌파해서 이란을 당황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천수 위원장은 자신의 결승골로 이겼던 2004년 이후 17년 동안 각급 대표팀을 막론하고 아자디에서 승리가 없던 점을 아쉬워하며, 하루 빨리 이 고리를 끊길 바랐다.

이 위원장은 "아자디는 물론 어렵다.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이젠 이겨내야 한다. 언급했듯 아자디라는 이름값에 눌리지 말고 초반부터 스피드로 자신감 있게 부닥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이번이 아자디에서 이길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후배들을 믿는다. 후배들도 스스로를 믿고 자신 있게 덤벼 보라"고 응원을 보냈다.

아자디 스타디움의 이란 관중들 © News1 박정호 기자

tre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