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제야 고통의 이유 찾았다"..2030여성 ADHD 4년새 7배
'말썽꾸러기 남자 초등생' 편견에 가린 뒤늦은 진단
여성 ㄱ(23)씨는 재작년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를 받던 도중 병원에서 에이디에이치디(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증상의 실체를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매일 당장 짐 싸서 집에 가는 생각, 의자를 들어서 던지고 싶은 생각에 내내 사로잡혀 있었지만 꾹 참고 있었어요. 성인이 된 후에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고, 생각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등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게 에이디에이치디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인터넷에 검색해도 과잉행동을 보이는 남성 청소년과 아동의 사례만 떴거든요.”
‘산만한 남자 아이’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알려진 에이디에이치디 진단을 받는 성인 여성이 최근 늘고 있다. 실제로 20∼30대 여성 에이디에이치디 환자가 최근 4년간 7배가 늘었다는 통계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30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에이디에이치디 질환 진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30대 여성 에이디에이치디 환자가 2016년 1777명에서 2020년 1만2524명으로 약 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연령대에서 증가폭이 가장 크다. 2016년 20~30대 여성 에이디에이치디 환자는 전체의 2.3%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전체 환자 중 10%를 차지했다. 통계를 보면, 10대 이하에서도 에이디에이치디 진단을 받는 여성의 수가 늘고 있다. 9살 이하 여아는 2016년보다 2020년 34.1% 증가해 남아의 증가율(22.1%)을 웃돌았고, 10대도 여성은 25.4% 증가(남성 15.5%)했다.
에이디에이치디 진단을 받는 성인 여성의 증가는 ‘뒤늦은 발견’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유아·청소년기에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해 ‘발견’되지 않다가 성인이 돼서 정신과 진료 중에 진단을 받으며 드러나는 것이다. 반건호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의 경우 에이디에이치디와 함께 찾아오는 우울증을 진단하다가 에이디에이치디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최근 많다”고 설명했다. 에이디에이치디 경험을 온라인이나 책으로 털어놓는 여성도 늘면서 이를 보고 진료를 받는 이들도 늘고 있다. 에이디에이치디 진단을 받은 김희주(25)씨는 “우연히 에이디에이치디를 겪는 외국 여성의 기사를 접하고, 관련 책을 읽으면서 에이디에이치디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이디에이치디가 남녀 가리지 않고 나타나지만, 과잉행동·충동형, 부주의형, 복합형 등 에이디에이치디의 다양한 유형 중 과잉행동·충동형만 강조돼 ‘말썽꾸러기 남자 초등학생’의 질환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설명한다. 반건호 교수는 “과거 에이디에이치디와 관련된 코호트 연구(장기간 추적조사)의 경우 대부분의 표본이 남성이어서 여성 에이디에이치디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여전히 여성의 에이디에이치디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자주 발현되는 ‘조용한 에이디에이치디’ 유형인 직장인 박아무개(30)씨는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들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정신과 대신 엉뚱하게 정형외과를 가기도 했다. 혼자 버텨왔다”고 털어놨다. ㄱ씨는 “정신과를 여러 차례 옮기고서야 에이디에이치디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한 병원에서는 에이디에이치디 증상이 의심된다고 말하니 의사가 ‘그렇게 얌전히 앉아 있는데 무슨…’, ‘딱 보면 아는데 당신은 아니다’라고 면박을 줬다”고 말했다.
여성 에이디에에치디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은 “아직 에이디에이치디에 대한 인식이 낮아 조기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의료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며 에이디에이치디 환자가 병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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