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없이 걷다가, 지치고 힘들 때, '더 나은 나'를 찾고 싶을 때..

한겨레 2021. 10.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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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지하비밀도서관

“참 용감하시네요.”

책방을 차리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책에 관련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20년 가까이 전세 유목민으로 살아온 이가 돈 안 되는 책방을 차린다니 걱정들이 많으셨지요. 어쩌면, 세기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러나 책 욕심이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부터 그리고 책만 한가득 가지고 지하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이미 용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지하 창문으로 보이는 남의 집 자동차 바퀴를 보며 사물을 인지하던 아이가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쯤, 저도 마 음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헛헛한 갱년기 도입부쯤에 시리아 청년들이 전쟁 폐허 속에서 책들을 찾아내 지하에 비밀도서관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화를 기록한 책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도요. 그때부터 책과 비밀 도서관이라는 단어들이 제 헛헛한 가슴을 뜨겁게 채웠고 언젠가 책방을 차리게 된다면 ‘지하비밀도서관’이라고 이름지으리라 마음먹게 됩니다. 시리아의 청년들에게도 저에게도 지하라는 공간과 책은 꿈과 희망의 징표였으니까요. 

‘지하비밀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 책리뷰를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책을 읽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서툴지만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과 연결이 되며 소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가님들과 소소하게 댓글로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문학상이라도 받은 듯 뿌듯하고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러한 달뜬 기분은 저를 용감하게 실재하는 지하비밀도서관을 만들게 했고 어느 순간 글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작가님들께서 지하비밀도서관의 계단을 내려오고 계셨습니다. 저자 사인회도 2번이나 열게 되었고요. 단지 책을 읽었을 뿐인데 그리고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책방을 열었을 뿐인데 꿈꾼 것들이 실제로 펼쳐져 너무도 신비롭고 황홀했습니다.

오래된 책방은 아니지만 마치 오래된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은 손님들을 만났습니다. 책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92살의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온 손님, 연암 박지원의 고추장 단지 글로 인연 맺게 된 손님, 제 책리뷰를 읽고 감동받았다며 메신저로 멀리서 책을 주문하시는 손님, 답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어 배회하다 저희 책방 간판을 보고 들어왔다는 우울한 청년 손님, 매일 아침 책 리뷰를 올리는 엠(M)출판사 편집자님, 예술분야 책들만 장인정신으로 펴내는 성직자 같으신 출판사 대표님, 오실 때마다 책을 한아름 사가시는 화가 손님, 엘(L) 작가님의 책을 항상 읽고 주무시는데 그 책을 친구가 빌려가 두달째 돌려주지 않는다며 너무도 속상해하시며 그 책을 다시 주문하시는 손님. 그리고 책방지기로서 살아가는 데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인생 자체가 책이 되는 작가 손님. 이러한 책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들이 역병이 몰아친 이 힘든 시기를 버텨내게 합니다. 거리두기 4단계로 손님이 너무 없어 시무룩해지다가도 제가 소개하는 책들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꿈이 되고 고단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생각하면 정신이 퍼뜩 들며 다시 책을 집어 듭니다. 마음을 뒤집어 분갈이 합니다. 

지난주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께서 손편지로 책 주문을 주셨습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 속에 나오는 책방지기와 가난한 작가 손님과의 관계처럼 저도 20년, 아니 그 이상의 우정을 나누겠다는 결심을 마음에 곱게 새겨 봅니다. 저는 소설도 좋아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삭히고 삭히며 살아낸 후 위로 맑게 고인 것들을 써내려간 실제 이야기들을 더 좋아합니다. 문학밖에 몰랐던 작가가 엉망진창인 가족을 끌어안으며 갖게 된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고립사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과 마음의 병으로 치우는 행위를 잃어버린 자의 쓰레기더미 집 등을 청소하며 가슴 아픈 애도로써 기록한 <죽은 자의 집청소>, 이른 나이에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기나긴 노동을 하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고단한 삶을 써내려간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와 같은 책들처럼요. 책방손님들은 귀신같이 압니다. 이 책이 주인장의 솔(soul)북인지 아닌지를요. 확신에 차서 눈을 반짝이며 책소개를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지하비밀도서관이 고단한 퇴근길 노동자에게는 편안한 쉼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청년들에겐 위로가,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청소년들에겐 청량음료 같은 신박한 아지트로, 작가님들에겐 책과 삶에 대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살롱이 되길 바랍니다.

시리아의 청년들은 말합니다. “책이 우리를 구해 주었어요. 무지의 암흑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패막이었어요. 더 나은 날들이 오리라는 보증과 같았죠.”(<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책이 여러분을 구원하진 못할지라도 가슴속 어딘가를 묵직하게 건드리거나 불타오르게 하거나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는 할 겁니다. 그 감동의 순간으로 안내하는 보람이 책방지기를 살게 합니다. 동네마다 각양각색의 동네책방이 채송화처럼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고 동네사람들이 퇴근길, 하굣길, 산책길에 들러 양손 가득 책꾸러미를 들고 나오는, 그런 유토피아적 상상을 해 봅니다. 싱긋,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날이 올 것처럼요.

목적없이 걷다가,

지치고 힘들 때,

‘더 나은 나’를 찾고 싶을 때 들러주세요.

글·사진/김인영 지하비밀도서관 대표

지하비밀도서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강송로87번길 54-19, B1
instagram.com/iyleftsi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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