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한 16세기 도그마에서 벗어나자

한겨레 2021. 10.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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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에너지·녹색성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대멸종 위기
자본주의는 성장 기반 체제
결과는 숙주의 죽음뿐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지음, 김현우·민정희 옮김 l 창비 l 2만원

읽으라고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적을수록 풍요롭다>는 흡인력이 커 진을 뺀다. 게다가 자괴감으로 사라지고 싶어져 잠을 못 들게 한다.

요지는 간단하다. 지구는 자원고갈, 기후변화로 대멸종 위기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청정에너지니 녹색성장이니 하는데 택도 없다. 정답은 탈성장이라는 얘기다. 이 책을 잡은 이라면 그 정도는 알 거다. 책은 두 파트다. 전반은 ‘많을수록 빈곤하다’(more is less)는 표제로 지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시말을 다루고, 후반은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는 제하에 탈성장 세계의 꿈과 그곳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전반이 어둠과 위협이라면 후반은 밝음과 위로여서 중간에 거울을 세운 모양새다. 거울상 체제라 했거니와 이를 일종의 화법이라 한다면, 그것은 전매특허처럼 곳곳에서 작동한다. 흡인력의 비밀은 바로 새로운 말 만들기와 만들어진 말로써 상식을 깨뜨리기다.

인류세(anthropocene)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의 사용이 폭증해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온 시대를 말한다. 지은이는 환경파괴는 인간과는 무관하다,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다,라며 대안으로 자본세(capitalocene)를 제시한다. 그 다음으로는 자본주의의 뒤태를 말하는데, 자연과 노동으로부터 주는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가는 약탈의 공식에 따른다.

자본주의의 씨앗, 인클로저운동 설명도 상식을 깬다. 봉건제 하 귀족과 교회에 맞서 일어난 농민봉기. 코너에 몰린 교회, 귀족, 상인, 부르주아지의 반격. 300년에 걸쳐 농민을 땅에서 몰아낸다. 광대한 땅에 울타리를 쳐 빈민과 유랑자가 양산된다. 자본가에게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은 마법. 소농의 붕괴와 산업혁명은 동전의 이면이다. 

기후붕괴의 책임을 나타내는 도표. 350ppm 임계치에 따른 국가별 공정 분담량을 초과한 역사적 배출량을 보여준다.(1850~1969년의 국경 내 배출량, 1970~2015년의 소비에 근거한 배출량). 창비 제공

남반구 식민은 또 다른 인클로저. 독일 귀족이 농민 10만 명을 학살한 1525년, 스페인 왕은 멕시코에서 선주민 10만 명을 학살한 코르테스에게 최고의 영예를 하사한다. 1500년대 초반부터 1800년대 초반까지 은 1억㎏이 유럽으로 이전된다. 선주민은, 처벌받지 않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노동력. 면과 설탕으로 바뀌어 유럽에 공급된다.

상식 깨기는 계속된다. 통상 자본주의는 시장과 교환으로 설명한다. C1→M→C2 즉, 교환을 통한 사용가치 창출은 해롭지 않다. 자본주의는 정확히 말해 가치의 지속적인 팽창 즉 성장에 기반한다. 멈춤 없이 무한 복제되는 암세포와 같은 성장. M→C→M´→C´→M´´→C´´→M´´´→C´´´…. 결과는 숙주의 죽음이다. 

세계 물질발자국(10억톤, 1900~2017). 검은색 수평선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최대 임계치다. 창비 제공
세계 GDP와 물질발자국. 창비 제공

자본주의가 최소한 유지되려면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2~3% 성장해야 한다. 성장률은 복리다. 복리 3%는 23년마다 규모를 2배로 늘린다. 2배 역시 복리다. 100년이 지나면 7000배가 커진다. 빠른 성장은 공격적이 된다. 포화상태의 시장, 최저임금법, 환경보호 등 장벽을 걷어찬다. 식민화, 노예무역, 아편전쟁, 서부개척 등이 그 예다.

자본의 역학 외에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의 역할. 그 핵심에 경제활동을 돈으로 환산한 GDP가 있다. 활동이 유용한지 파괴적인지 따지지 않는다. 숲을 망가뜨려도, 산재로 입원해도 GDP는 올라간다. 텃밭 가꾸기, 집 청소, 노부모 봉양은 안 친다.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고 이자를 준다. 정부도 기업 논리를 따르고 기업의 성장에 기댄다. 고임금, 노동조합, 공중보건, 교육 투자는 요주의 대상이 됐다. 자본 접근이 금지됐던 철도, 에너지, 물, 의료, 통신은 민영화 대상이 됐다.

요체는 GDP가 에너지와 자원 사용과 결합돼 있다는 것.

자원 사용은 1900년대 50년 동안 70억 톤에서 140억 톤으로 2배로 늘었다. 1980년 350억 톤, 2000년 500억 톤, 2017년엔 920억 톤으로 치솟는다. 과학자들이 보기에 지구의 물질발자국 처리능력은 연 500억 톤이다. 현재 2배를 초과해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물질사용은 세계 GDP 증가와 거의 일치한다. 특징적인 것은 저소득-고소득 국가 사이의 엄청난 차이. 전자는 1인당 연 2톤, 후자는 평균 28톤이다. 미국은 35톤이다. 기후붕괴도 그러하다.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 책임은 92%가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북반구 국가에 있다. 미국이 40%, 유럽연합이 29%다. 정작 피해는 남반구 몫이다. 기후붕괴로 인한 비용 82%를 부담한다는 통계도 있다. 2000년 가뭄, 홍수, 기아, 전염병으로 죽은 이가 40만 명인데 그중 98%가 남반구다. 대기의 식민화. 지구온도 1도 상승이 그러한데 2도면 남반구는 죽음이다. 

지난 9월19일 미국의 기마 국경순찰대가 멕시코와 텍사스 국경을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에서 강을 건너 월경을 시도하는 이주자들을 쫓아내고 있다.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그로 인해 피해를 봐 유랑민이 된 이들을 서부개척 시절 소몰이 하듯 몰아내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델리오/AFP 연합뉴스

2015년 ‘세계정부’가 해결책을 찾았다고들 한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배출량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그 약속은 2도가 아닌 1.5도로 맞춰져 있다. 2도에 맞추려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 꼼수가 있다. 대기의 탄소를 빨아들이는 행위 예컨대 나무 플랜테이션을 조성하면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해주는 것. 한국 산림청이 지난해 9월 캄보디아에서 펼친 산림보호 활동으로 온실가스 65만 톤을 줄인 성과를 냈다고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실제로는 되레 산림을 파괴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 외 청정에너지, 전기차도 있다. 안 하느니보다 낫지만 이를 위해 또 다른 물질이 필요하고, 그것이 몰려 있는 남반구 식민지화를 부른다. 궁극적으로 거기서 얻은 이득으로 뭐 할 건데? 1000배 좋은 기술? 그다음은 대량실직. 우리는 ‘성장의 덫’에 걸렸다. 답은 탈성장이다.

지은이의 절묘한 비유.

우리는 미술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최고 걸작이다. 어느 것도 이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떠한 시도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왜 16세기의 칙칙한 도그마에 매달려 있는가.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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