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중국의 거대한 전환, 함정에 빠진 한국

한겨레 2021. 10.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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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칼럼]중국의 이중운동 양상이 어찌 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는 오늘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이 불평등과 불공정의 개혁 경쟁에 나선 형국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촛불항쟁이 준 기회를 까먹으며 국정농단 주범 재벌 총수를 국익의 이름으로 풀어주고, 부자 감세를 단행하는 등 뒷걸음질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은 다시 전환 함정에 빠졌다.

이병천ㅣ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견제와 균형은 삼권분립의 원리인 동시에, 사회경제의 건강성을 보장하는 기본원리이다. 견제와 균형 장치가 없으면 공권력과 자본, 토건세력이 담합해 권한과 자원을 농단하고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어떻게 제도화하는가. 자본주의의 다양성은 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먼저 강한 노동의 힘이 성장해 자본의 지배적 특권을 길들이며 견제와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독일,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길이다. 하지만 세계 많은 곳에서 노동의 힘은 미약하다. 둘째, 강한 반독점을 통해 열린 시장경제를 만드는 길이 있다. 경제권력 자체를 분산시켜 기회를 평등하게 하고 패자 부활을 용이하게 한다. 이 분산자본주의는 미국의 길이다. 셋째, 강한 국가의 힘, 그 규율력과 조정력으로 자본의 길을 유도하며 특권을 견제하는 경로가 있다. 동아시아가 전형적이다. 이 유형에도 국가가 자본을 키우되 통제의 고삐를 계속 쥐고 가는 경우(중국)와 고삐를 놓아버리고 대자본에 끌려다니는 경우(한국)가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견제와 균형 원리를 제도화하고 있는가. 강한 노동인가, 아니면 경제권력의 분산인가. 그것도 아니면 강력한 국가인가. 이미 노동, 토지·주택, 화폐·금융이 과격하게 상품화되고 사회경제 불평등과 불공정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어떤 힘이 있어 거대 재벌과 자산 부자의 방종적 자유에 대해 보호적 대항력을 구성하고 견제와 균형을 잡게 해주나. 이것이 오늘날 촛불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뻥 뚫린 구멍에 심각한 불안을 느끼며 내가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비교적 견지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이웃, 중국의 길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종종 중국 모델을 동아시아 개발국가의 변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분명 일리가 있지만 반쪽만 맞는 생각이다. 후발 추격국가로서 대외 개방이 주는 이익을 어떤 경험보다 폭넓게 활용한 것, 국가 주도의 시장 관리 곧 기업의 투자 유도와 금융 통제 및 조건부 지원을 통해 관민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 그리고 노동계급의 정치적 도약이 봉쇄된 것, 그에 따른 계급 구조상의 원천적 불균형이 기업하기 좋은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 것 등은 유사하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당과 일체가 된 전제적 국가가 강대한 권한을 갖고 자본주의 작동을 주도한다. 국유 부분이 30%나 된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매우 높고 지역 간 경쟁이 치열한 것, 아래로부터 창업과 혁신 활동이 활발한 것, 그리고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 등도 중국의 중요한 특징이다.

신중국 모델의 기본 틀은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의 결정, 그리고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를 전환점으로 약 20년에 걸친 체제 전환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극적인 대전환의 기원에 오늘날 새로운 분기점에 선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빛과 그늘이 거의 다 담겨 있다. 체제 전환 20년은 1980년대의 패자 없는 개혁과 1990년대의 패자 낳는 개혁 두 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에서 중국은 러시아적 충격요법과 달리 점진주의 실험의 길을 선택하는데, 이는 중국이 체제 전환에 성공한 결정적 일보였음이 판명되었다. 중국의 대표적 제도경제학자 우징롄 교수는 점진주의라기보다 ‘유기적 발전’ 전략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간 부문이 아래로부터 성장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다. 결코 사유화를 촉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1단계에서는 모두가 승자였다.

1990년대 중국은 드디어 패자를 낳는 2단계, 더 정확히 말해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적 개혁 단계로 진입했다. 회사법이 도입되었다. 국유기업이 법인회사로 전환되고 구조조정 되면서, 효율성이 강제되는 경성 예산제약에 직면한다. 1993년 이후 10년간 2800만명 규모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되었다. 해고된 노동자는 3년까지 생활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기업의 주식 지분을 갖지는 못했다. 주택, 의료 등 기왕의 단위체제가 준 사회보장도 상실했다. 새로운 도시 노동시장에 알몸뚱이로 내던져진 더 거대한 노동자 대중에는 시민권이 박탈된 농민공이 있었다. 이들은 저임금으로 압축 성장 기적의 비용 경쟁력을 바닥에서 떠받쳤지만, 호적 유무로 차별화된 도농 이중구조 아래 사회보장에서 배제되었다.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토지·주택의 상품화는 노동력의 상품화와 함께 공동체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거대한 전환에서 양대 핵심적 국면이다. 토지가 국유화된 나라인데 집값이 치솟고 대출 상환에 쪼들려 집의 노예가 된 ‘팡누’는 웬 말이며, 초대형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가 파산 위기에 몰렸다니 이 또한 웬 말인가. 문제의 근원은 ‘출양제’라는 토지사용권의 양도 방식에 있었다(조성찬). 재정 확충 수단으로 지방정부는 토지 출양금(사용료)을 일시불로 받고 저가로 수용한 토지를 개발업체에 양도했다. 이에 따라 사용 기간에 급등한 토지 가치, 곧 지대는 개발업체가 사유화했다. 이어 토지 출양제가 주택 상품화와 결합되면서 집값 상승 지대가 주택 소유자에 귀속되는 틀이 만들어졌다.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는 350조원에 이르는 부채로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상하이의 헝다센터 빌딩 전경. 연합뉴스 제공

문화혁명을 거친 나라에서 노동자가 아무런 자산적 지분이나 공동결정권도 갖지 못한 채 시장에 내던져졌을뿐더러 토지·주택의 상품화로 지대 또한 사유화되다니, 퍽 당황스러운 역설이다. 외자를 유치하고 세계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전략 때문이었다는 게 유력한 설명이지만 그뿐일까.

중국은 저임금·저복지 기조 아래 투자·수출·부동산개발이 주도하는 고강도 성장우선주의 길을 걸었다. 중국식 강한 국가-기업-금융통제의 삼각 협력체제는 압축 성장 기적만큼이나 압축 불평등을 낳았고, 과잉투자와 과소소비 간의 극심한 불균형 현상을 가져왔다. 당-국가 독재체제는 성장·성공을 주도했을뿐더러 그에 따른 구조적 모순을 봉쇄·억압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시진핑 정부가 오랜 불균형 발전 궤적에서 벗어나는 듯한 새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내시장 확대에 방점을 두고 국내·국제가 상호 촉진하는 신발전 구도를 제시했다. 또 공동부유를 내세워 극심한 불평등을 축소하고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일, 빅테크 독점 및 무분별한 부동산개발을 규제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이 변화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중국의 이중운동 양상이 어찌 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는 오늘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이 불평등과 불공정의 개혁 경쟁에 나선 형국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촛불항쟁이 준 기회를 까먹으며 국정농단 주범 재벌 총수를 국익의 이름으로 풀어주고, 부자 감세를 단행하는 등 뒷걸음질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은 다시 전환 함정에 빠졌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새 모멘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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