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기자가 악플을 읽게 하는 법

임재우 2021. 10. 1.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슬기로운 기자생활] 임재우 젠더팀 기자

“기자님, 제보가 있습니다.”

당장 아침에 보고할 거리가 고갈된 긴급하고 위중한 상황. 이대로 보고시간에 당도하면 팀장을 볼 면목이 없어지고, 기자 할 염치도 사라진다. 절박한 마음으로 전자우편함을 열었을 때 52통의 읽지 않은 메일 속 “제보”라는 단어에서 섬광처럼 번쩍 빛이 난다. 할렐루야. 벅차고 안도하는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한다. “임재우 이 ××놈아 한걸× 기레기야. 이 벌레 같은 놈”.

낚였다. 악플에 나름 단련되었다고 자부해왔지만, 이런 위장술에는 평정심이 적잖게 흔들린다. 짧은 순간 마음속으로 저 사람의 법적 처벌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 보고가, 당장 취재거리를 하나라도 발굴해내는 게 더 급하다. 수분 뒤 얼렁뚱땅 보고를 마치면 거짓 제보자의 메일은 어느새 까먹는다. 하루살이의 기억력은 길지 않다.

부탁한 적도 없는데 평소 내 기사를 유심히 보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은 기사에 달린 악플도 수고스럽게 공유해준다. “재우야, 오늘 네 기사에 악플 엄청 달렸다. 괜찮니?” ‘괜찮니?’라고 걱정해주기 직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기분이 안 괜찮다. 친구가 공유해준 기사를 클릭해보니 110여개의 ‘좋아요’와 130여개의 ‘후속 기사 원해요’, 1100여개의 ‘화나요’가 날 맞이한다. 댓글 창에는 이 기사를 쓴 기자가 ‘꼴페미 기레기’라는 견해와 ‘보기 드문 남기자’라는 견해가 8 대 2 정도로 대립한다. 대수롭지 않은 듯 친구에게 답장을 보낸다. “나는 댓글 잘 안 봐 ㅎㅎ”. 앞으로 이런 거 공유해주지 말라는 뜻이다.

기자가 된 뒤, 종종 주변에서 ‘악플을 보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악플로 도배될 기사를 쓸 기회가 넉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향한 수사가 한창 굴러갈 때가 그랬고, 이제는 거물이 된 30대 정치인이 ‘여성할당제’ 폐지를 운운할 때가 그랬다. 진실을 말하자면, ‘선택적으로’ 본다. 여전히 ‘주니어’에 속하는 연차지만 수년 동안 유의미한 비판과 무의미한 악플을 눈대중으로 분별하는 ‘스킬’을 쌓았기 때문이다.

먼저 너무 심한 욕설이나 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은 거른다. 이런 댓글이 유효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하나의 기준은 ‘기레기’의 사용 여부다. 그 아무리 저명한 교수라도 ‘기레기’를 말하는 순간, 그분의 비판을 흘려듣는다. ‘기레기’라는 멸칭은 이제 하도 범람하는 말이 되어, 그 말로 무슨 정신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다만 예리한 독자일수록 ‘기레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게 내가 얻은 경험칙이다.

기자 세계에도 알량한 권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이들이 있다. 의미 있는 기사를 쓰려고 분초를 다투는 이들도 있다. ‘기레기’를 쓰지 않는 독자들은 기자라는 집단이 특정 멸칭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방대하다는 것을 안다. 허술하고 악의적으로 쓰인 기사뿐만 아니라, 공들여 발굴해낸 값진 진실이 담긴 기사도 적지만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런 독자일수록 자신의 비판을 ‘기레기’라는 말로 뭉개지 않고, 기사가 누락하거나 왜곡한 맥락과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아무리 혹독한 내용이더라도 이런 분들의 비판에서는 자신이 발 담지 않은 직업세계에 대한 존중과 격려가 읽힌다. 이런 댓글이나 메일은 설령 동의할 수 없어도 꼼꼼하게 읽는다. 종종 ‘지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장도 보낸다.

기자가 된 뒤 이 직업에 대해 별로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첨예한 사안을 다루는 업을 택한 이상 ‘악플’은 숙명일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정말 뜨끔하게 하는 내용들은 드물고 동시에 귀하다. 분명한 것은 기자들이 예리한 독자에게 반드시 반응하게 된다는 점이다. 굳이 메일에 ‘기자님, 제보가 있습니다’라고 거짓 제목을 달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아, 아직도 속았다는 게 분하다.

abbad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