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쓴 것은 좋은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 썼다며 작가 감금
'올바른 작품' 강요하는 당국과
표현의 자유 위해 싸우는 작가
일몰의 저편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l 북스피어 l 1만5800원
강간, 어린이 성애증, 페티시즘 같은 소재를 주로 다루는 소설가 마쓰 유메이에게 어느 날 소환장이 날아든다. 발신자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문윤)라는 기구. 소환장에는 “귀하에 대한 독자의 제소를 심의하고 사정 청취를 하고자” 출두를 요구한다고 적혀 있다. 반신반의하며 알려준 장소에 나간 마쓰는 그 길로 한적한 바닷가 절벽 위 ‘요양소’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얼굴에 흩날리는 비> <그로테스크> <아웃> 등의 소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신작 <일몰의 저편>은 문학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 기구의 간섭과 억압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세계적인 미투 물결과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이 느끼는 불만과 불안을 추리적 기법에 담았다. 기리노 나쓰오는 나오키상과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올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펜클럽 회장에 취임한 중견 작가다.
“독자의 고발이 있었습니다. 마쓰 유메이는 강간이나 폭력, 범죄를 긍정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고. (…) 놀랍게도 이런 고발은 대부분 여성 독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 개중에는 강간 같은 성행위에 여자가 환희를 느끼는 장면도 있더군요. 여성 독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마치 그런 행위를 긍정하는 듯한 묘사 때문입니다.”
요양소 소장인 다다 고지로는 마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자신 여성인 마쓰는 다다가 제시하는 ‘혐의’를 납득하지 못하고 이렇게 반박한다.
“소설은 옳다 그르다로 판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건을 그대로 쓸 뿐, 사건을 심판하는 게 아니에요. 진실은 당신이 말하는 올바름과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그건 독자에게도 전해질 겁니다. 왜 당신들은 요즘 할리우드 영화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갇힌 듯한 멀쩡한 말만 하는 겁니까.”
소설 앞부분에서 마쓰와 다다는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한 일종의 토론을 벌이는데, 다다가 문학작품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근거로 ‘헤이트스피치법’을 드는 것이 흥미롭다. 혐오발언을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이 문학작품에 대한 통제를 가능케 하는 법적 근거라는 것이다.
“일 년 반 전에 헤이트스피치법이 가결되었죠. 그걸 계기로 헤이트스피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표현물에 등장하는 성차별, 인종 차별 등도 규제해 나가기로 한 겁니다. 해서 우리는 먼저 소설을 쓰는 작가 선생님들이 룰을 지키게 하자고 얘기가 된 겁니다. 법적 근거가 있으므로 우리가 위법 행위를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에 대해 마쓰가 헤이트스피치는 예술 표현이 아니고 선동일 뿐이며 “예술 표현은 창작물이니까 창작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맞서지만, 다다에게 그 말이 먹혀들 리는 만무하다. 그는 마쓰가 “이곳에서 자기 작품의 문제점을 확실히 직시해서 인식하고 훈련을 통해 교정한다면 귀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쓰의 추가 질문에 그는 “사회에 적응한 작품”, “올바른 작품”을 쓰는 것이 ‘교정’이라고 설명한다. 다다의 윤리주의적 문학관은 소설 뒷부분에서 이런 질문으로 표출된다.
“당신이 쓴 것은 좋은 소설입니까, 나쁜 소설입니까?”
마쓰와 다다의 ‘토론’은 제법 점잖고 고상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끔찍한 현실이 웅크리고 있다. 요양소에 들어온 작가들은 마음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전화나 인터넷 사용도 금지되며 방에는 감시 카메라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수용된 작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금지되며, 시간표에 따라 밥을 먹고 글을 써서 제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직원에 대한 폭언과 지시 불이행 등은 감점으로 이어지며, 감점을 받은 만큼 요양소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마쓰는 처음에는 다다가 원하는 ‘착한’(?) 소설을 써서 제출해 그의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퇴소에 관한 약속은 사탕발림일 뿐 한번 요양소에 들어온 작가는 결코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요양소 안에서 마쓰는 구속복에 갇히고 사지가 묶인 작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용기가 생기길 기다리고 있다는 작가, ‘전향’해서 요양소 일을 돕는 작가 등을 목격하고, 그 자신 수상쩍은 주사를 맞고 알 수 없는 약을 강제로 복용하면서 심신이 피폐해져 간다. 절망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했다는 작가들에 관한 소문도 그를 괴롭힌다. 자먀찐의 <우리들>이나 오웰의 <1984>처럼 출구가 막힌 디스토피아적 세계다.
마쓰와 문윤의 갈등과 대립은 주로 성적인 묘사를 둘러싼 것이지만, 거기에는 갈수록 보수화해 가는 일본 체제와 비판적 문화예술 사이의 충돌이라는 정치적 맥락 역시 자리한다. 다다 소장은 마쓰가 문예지와 대담을 하면서 정권을 비판한 사실을 들먹이고, 마쓰가 요양소에서 마주친 작가 중에는 “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던” 이도 있고 그는 결국 절벽 아래로 투신한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마쓰는 자신이 “대중소설 작가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밝히는데, 이는 기리노 나쓰오 자신의 자기 평가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규제 대상은 아무래도 엔터테인먼트 소설 분야이고 노벨상급 소설이라면 뭘 써도 괜찮다는 차별이 있는 모양”이라는, ‘헤이트스피치법’에 관한 마쓰의 관찰은 ‘대중소설 작가’로서 기리노 나쓰오의 자의식 내지는 문제의식을 담은 발언으로 보인다.
책 뒤에 실린 편집자 후기에 따르면 기리노 나쓰오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두고 “다들 너무나 능숙하고 잘 쓰지만 한편으로 ‘이걸 쓰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내면화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다양한 비난이나 장벽에 부딪칠지언정 나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도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들 역시 새겨 들을 만한 조언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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