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세종대왕은 언론중재법을 어떻게 보았을까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2021. 10. 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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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자유(freedom of speech) 없이는 정치도, 문명도 없다.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다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만 말이 있다. 말이 없다면, 인간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박주민 법사위 위원장 직무대리가 지난 8월 25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개정안을 통과 시킨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덕훈 기자

동양이 문장 중심이라면, 서양은 말이 우선이다. 정치도, 재판도 말이 중심이다. 시저는 심지어 전투에 앞서 병사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런 전통은 그리스에서 왔다. 그리스인의 생활은 소박했지만 대화는 풍부했다. 대화는 그들에게 생명의 호흡이었다. 아고라에서의 대화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 속에서 철학과 민주주의가 활짝 개화했다.

동양은 조금 다르다.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이다. ‘한비자’의 첫 시작이 난언(難言), 즉 ‘말하기의 어려움’이다. 왜 어려운가? 역사를 보면, 곧은 말, 바른말을 하는 사람 중 죽거나 가시밭길을 걷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상의 환경에서도 그렇다.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성군이고, 그의 재상 이윤은 명재상이다. 하지만 이윤은 처음에 요리사였다. 이윤이 발탁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가 쌓인 뒤였다. “지극한 지혜로 지극히 착한 임금을 설득해도, 지극하다고 해서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한비의 결론이다. 하물며 지극히 정성된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좋은 정치가 그토록 드문 이유이다.

그런데 한국 역사에서 말의 자유가 찬란히 꽃핀 때가 있었다. 바로 세종의 치세이다. 1418년 22세의 나이로 즉위한 세종은 첫 조정회의에서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사권은 가장 나누기 어려운 권력이다. 세종은 재위 32년간 이 ‘의논’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고수했다. “더불어 의논한다”(與議)는 표현은 ‘세종실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말이다.”(김홍우 교수)

세금에 관한 공법 개혁이 대표적 실례이다. 조선 초기의 조세제도는 인정과세인 답험손실법이다. 당연히 징수 부정이 많았다. 그래서 정액과세인 연분9등, 전분6등제로 바꾸려고 했다. 의견 수렴을 위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인원이 무려 17만 명에 달했다. 수령부터 평민까지 모두 참여했다. 세계 최초의 일반 여론조사였다. 그런데 명재상 황희가 공법에 반대했다. 오히려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 그리고 지방간 토지 비옥도를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종이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집현전 학자들도 반대했다. 그들조차 “내 뜻을 알지 못하니, 하물며 기타 사람들이겠는가.” 절망한 세종은 그들을 불러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으며, 세종은 “하는 말이 참으로 옳다” “나는 능하지 못하다”고 자책했다. 해질 무렵 시작한 모임은 밤 10시에 끝났다. 17년에 걸친 논의 끝에 세종은 마침내 공법 개혁에 성공했다.

풍수지리 논쟁도 놀랍다. 성리학은 풍수지리를 사술로 본다. 그러나 세종은 지관 최양선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옹호하고, 직접 풍수지리설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특정 이념으로 타인의 입을 막으면 안 되고, 국정에 필요하면 이념을 넘어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비록 꼴 베는 사람의 말이라도 옳으면 채택하고, 비록 틀려도 죄주지 않는 것이 왕의 자세라고 역설했다. 언로가 막힐 것을 염려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한 것은 비록 중도(中道)를 잃었더라도 또한 죄를 가하지 않았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거침없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던 좌의정 허조는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유한이 없다”고 말하며, 웃으면서 임종했다. 세종의 치세에 수많은 인재들이 나타나 활약하고, 문화적 성숙을 이룬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언론중재법 처리가 일단 연기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말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말의 의미는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국정 전반이 난조에 빠지고, 상식이 무너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종의 정치와는 정반대이다. 위정자뿐만 아니라 세종 같은 시민이 많아야 한다. 말의 자유는 단순한 언론 문제가 아니다. 말이 막히면 생각도 죽는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관리하는 정부에는 얼마나 행운인가?” 히틀러의 말이다. 전체주의는 그런 사회의 코앞에 와 있다. 언론중재법은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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