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이어 유럽 지도자로 떠오른 마크롱의 ‘우향우’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10. 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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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해산 작업에 나섰다. 알제리 등 전통 우호국인 북아프리카 3국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무슬림·이민자에 대한 정책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자 칼을 빼든 것이다.

마크롱은 내년 재선에 성공해 조만간 퇴임할 예정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뒤를 이어 확고한 유럽의 리더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내 ‘반(反)무슬림·반이민’을 부르짖는 극우 내지 우파 후보들이 마크롱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어 대선 레이스에 변수가 되고 있다. 이들은 중도 우파인 마크롱이 무슬림·이민자에게 유약하게 대응한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런 공격에 맞서 마크롱이 리더로서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려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29일(현지 시각)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전국적으로 6개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폐쇄 절차를 진행 중이며, 극단적인 이슬람 선전을 전개하는 몇몇 단체는 해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해산할 단체 중에는 이슬람계 출판사 나와가 대표적이다. 나와는 지하드(이슬람교 전파를 위해 벌이는 투쟁)를 미화하는 책을 펴내 논란을 일으켜왔다. 또한 유대인을 박멸하자거나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자는 출판물도 찍었다. 지난해 주불 미국 대사관 앞에서 폭력 시위를 벌인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단체 LDNA도 해산될 전망이다.

테러 전쟁서 순직한 군인에 조의 표하는 마크롱 - 지난 29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말리에서 테러 단체와 전투를 벌이다 사망한 막심 블라스코 상병의 관에 조의를 표하고 있다. 블라스코 상병은 지난 2019년 말리의 군사 기지에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은 두 명의 동료를 구출해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았다. 앵발리드는 프랑스군 전몰 용사 추모 공간과 군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보훈 시설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에서는 작년 10월 중학교 교사가 길거리에서 무슬림에 의해 목이 잘린 사건을 중심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가 잇따르자,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비등해졌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다. 전체 인구 6700만명 중 무슬림이 6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정부는 하루 전날인 28일에는 알제리⋅모로코에 대해 비자 발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튀니지에 대해서는 3분의 1로 줄인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들 북아프리카 3국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이런 나라들에 대해 비자 발급 대폭 축소 조치를 취하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외무부는 이 국가들이 프랑스에서 비자 신청이 거부된 자국인들을 본국으로 데려가는 데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에 이들 3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비자가 거부된 1만4456명 가운데 불과 233명만 모국으로 돌아갔다. 나머지는 죄다 프랑스에 불법 이민자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크롱 행정부가 이처럼 뚜렷한 ‘우향우’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극우 또는 우파 대선 후보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29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3%를 기록했다. 이어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16%), 공화당의 자비에 베르트랑 오드프랑스(북부 광역 지방자치단체) 의장 (14%), 극우 시사평론가 에리크 제무르(13%)가 뒤를 이었다. 마크롱이 1위를 지키고 있긴 하지만 2~4위에 극우, 강경 우파, 극우 후보가 차례로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극우와 우파 진영을 따돌리기 위해 마크롱이 선거 전략상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지난 26일 독일 총선을 계기로 메르켈의 퇴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마크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차기 독일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한동안 새내기로 받아들여질 예정이기 때문에 유럽을 이끌 리더가 당분간 마크롱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많은 EU 국가들이 마크롱의 정책 아이디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마크롱이 반무슬림·반이민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주변 국가들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 1월 프랑스가 EU의 순회 의장직을 맡게 되기 때문에 마크롱에게 더욱 힘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마크롱이 유럽의 리더로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둘은 마크롱처럼 중도 우파 성향의 지도자들이다.

프랑스 싱크탱크인 몽테뉴연구소의 조지나 라이트 연구위원은 로이터통신에 “프랑스가 유럽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마크롱이 종종 지나치게 독단적이라는 점은 문제”라고 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독일의 도움 없이 마크롱 혼자 유럽의 리더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독일에서 연정 협상이 빨리 마무리돼 차기 정부가 일찍 출범하는 쪽이 마크롱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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