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또래가 받은 50억 퇴직금

손호영 기자 2021. 10. 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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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좋지 못한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들이 모두 내 또래 밀레니얼이다. ‘조모’는 서른, ‘문모’는 서른아홉, ‘곽모’는 서른하나. 밀레니얼의 범위는 1981~1996년으로 상당히 넓다. 올해 마흔으로 특혜 분양 의혹을 받는 ‘박모’도 아슬아슬하게 밀레니얼로 묶인다.

그러나 나와 그들의 공통점은 딱 거기까지다. 이전 어느 세대보다 ‘공정’과 ‘정의’를 중시한다던 밀레니얼의 특성은 이름 앞에 ‘OO의 자녀’란 글자가 안 붙었을 때만 유효하다. 대신 “모든 게 내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는 비대한 자의식이 이들 ‘2세’의 공통점인 듯하다.

최근 곽상도 부자의 ‘50억 퇴직금’ 논란에서 평범한 밀레니얼을 분노케 하는 이들의 자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본질은 50억이란 천문학적 액수 그 자체가 아니다. 곽씨가 그 돈을 안 받는다고 다른 밀레니얼들이 그 돈을 나눠 가질 수도 없다. 각종 지원금 논란을 빚는 대통령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2년간 작가로 활동하며 세금으로 지원받은 액수는 약 2억. 큰 액수지만 그가 2억을 반납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무감각,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도 모른 척하는 뻔뻔함이 아닐까. 문씨의 페이스북 글에선 “대통령 아들인 내가 이런 지원금을 과연 받아도 되는가”란 겸양과 고민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주변이 알아서 넙죽 엎드려도, 모른 척 “특혜는 없다”고 단언하는 그의 오만함이 가장 큰 문제다.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취지로 쓴 곽씨의 긴 해명 글에서 문씨가 겹쳐 보였다. 곽씨는 문씨처럼 디자인 전공자다. 곽씨 글에 따르면 그는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다가 “아무개가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곧바로 ‘절차에 따라’ 지원했고, 면접에 합격해 입사했다. 부동산 개발 업무 경력이 전무한 디자인 전공자가 아버지 덕에 50억 로또 회사에 특혜 취업한 데 대한 문제의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글에서 회사를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대박이 날 수도 있겠다.” “한번 베팅해볼 만하다.” 스물여섯 첫 직장에 일개 직원으로 입사 지원하며 ‘대박’ ‘베팅’ ‘올인’ 같은 걸 논한다. 창업자나 쓸 법한 말이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이라면 “부동산 경력도 없는 내가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다른 밀레니얼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는 자신의 노력과 성실성을 너무나 강조하고 싶었던 나머지 또 하나의 무리수를 던졌다. “다만 저는 주식, 코인에 올인하는 것보다 ‘화천대유’에 올인하면 대박 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한탕이나 노리는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리 ‘성실하게 일해 번 돈’이란 말인가. 성실과 노력 말고는 별다른 무기가 없는 평범한 또래들, 주식이나 코인이 아니면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만으로 느껴졌다.

그는 글에서 ‘저는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이라고 했다’. 정 자신을 그 게임의 말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아마도 참가 번호는 1번으로 해야 할 테다. 드라마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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