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300번 회의 하면 뭐 하나

2021. 10. 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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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대외 경제 현안을 외교·안보 이슈와 결합해 논의하는 장관급 회의체 ‘대외 경제안보 전략 회의’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경제부총리가 주관하는 회의로 경제뿐 아니라 안보 분야 장관들, 청와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인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도 참석 대상이다. 혁신 기술 등장으로 기술 생태계가 변모하자 세계 각국이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 간 원부자재 공급망(GVC) 재편 등 굵직한 변화도 이뤄지고 있는 시점이다. 반중·반미 등 정치권의 논리만으론 풀 수 없는 대외 경제 이슈를 ‘경제 사령탑’이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다. 경제 부처 관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길 일 같은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일각에선 “회의만 하나 늘었을 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 중회의실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년 12월 임명된 홍 부총리는 이달 초 취임 1000일을 맞았다. ‘최장수’ 기록은 갈아치운 지 오래다. 그간 장관급 공식 회의를 모두 208회 주재했다. 경제 관계 장관 회의가 100회, 부동산 시장 관계 장관 회의 29회, 대외 경제 장관 회의 22회다. 비공개 경제 장관 회의인 ‘녹실 회의’(80회) 등을 합하면 총 300회에 육박한다. 여기에 대외 경제 관련 장관급 회의가 추가됐다.

사흘에 한 번꼴로 장관급 회의를 주재하며 적극적으로 대한민국 살림을 챙겼지만, ‘수퍼 여당’과 청와대 앞에선 끝까지 소신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앞두고 홍 부총리는 선별 지급을 주장했지만, 결국 정부 여당의 ‘전 국민 지급’을 수용했다. 올해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도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지급하기를 주장했지만, 하위 88% 지급안을 수용했다. 2019년 정부의 증권거래세 인하 추진에도 반대했으나, 나중에 입장을 바꿨다. 지난해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을 10억원 이상 보유에서 3억원으로 강화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홍 부총리는 여당과 벌인 힘겨루기에서도 매번 한 걸음 물러났다. 여당만이 아니다. 지난해 수도권 주택 공급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서울시·국토부 등과도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고 못 박으며 일단락됐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패권 경쟁 수단으로 경제정책을 활용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EU로 제품을 수출하려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따라 배출권을 구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국민 정서’ 등을 이유로 특정한 대외 경제정책을 요구할 때, 경제 사령탑이 국익 확보를 위해 소신을 지킬 수 없다면 ‘전략 회의’를 아무리 한들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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