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석의 뉴스 저격] ‘섀도 프레지던트’ 트럼프, 2024년 대선서 바이든과 다시 붙을까

이민석 워싱턴 특파원 2021. 10. 1.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AP 연합뉴스

지난 1년간 미국 사회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대선 사기’를 주장하는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도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지지자들은 이에 열광하는 현상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트럼프를 ‘섀도 프레지던트(Shadow President·그림자 대통령)’라고 부르고 있다. 현실에선 아무런 권한이 없지만 빛(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트럼프)처럼 떼어놓을 수도 그 활동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국경 관리 소홀, 아프가니스탄 철군,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 등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이 부각될 때마다 이를 겨냥해 ‘집중 포화’를 퍼붓는 방식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며 활동 폭을 크게 넒히고 있다. 최근엔 2024년 대선을 가정한 양자 대결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앞선다는 여론 조사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약 7400만표(46.9%)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 패배자’가 됐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막강하고, 정치판에 그가 드리우는 그림자는 크고 선명하다.

◇”바이든 아닌 내가 대통령”

“(지난 대선에서) 제가 패배를 인정한 적 없는 것 아시죠?”

지난 25일(현지 시각)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州) 소도시 페리에서 열린 친(親)트럼프 진영 정치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자 지지자 수천 명이 환호했다. 집회에 참석한 존(62)씨는 기자에게 ‘바이든을 탄핵하자’라는 팻말을 보이며 “바이든은 (대선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대통령 자리를 불법적으로 차지하고 있을 뿐, 진짜 대통령은 트럼프”라고 말했다.

지난 1월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을 정지당했다. 그러자 그는 3월 말 미국의 45대 대통령이라는 뜻을 담은 ‘45오피스 닷컴’이란 웹사이트를 열었다. 배경에 미국 대통령의 공식 문장(紋章)과 비슷한 독수리 문장을 넣었다. 홈페이지 상단 곳곳에는 대통령 재임 당시 군부대를 사열하거나 대통령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사진을 게재했다. 마치 그가 지금도 현직 대통령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자신 명의의 성명을 낼 때도 ‘전직 대통령(former president)’ 대신 ‘제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CNN방송은 “(트럼프와 측근들이) 2020년 대선 캠페인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실제 대통령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작년 12월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은 미 시사주간지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여러 측면에서 그는(트럼프) 섀도 프레지던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그(트럼프)는 공화당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며 “만약 그가 바이든이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한다면 (그 일에) 공화당원들을 참여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트럼프가 (그 일을) 축복한다면, 바이든은 훨씬 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퇴임 이후에도 트럼프가 ‘대통령 행세’를 이어 가고, 바이든 행정부를 장외에서 공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현 상황을 ‘예언’한 것이다. 트럼프의 지난 1년간 행보가 치밀하게 참모들과 ‘계획’한 결과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의 잇따른 실책으로 ‘반사 이익’

트럼프는 지난 8월 들어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철군 정책 실패’, 허술한 국경 정책 등을 집중 공격하면서 활동 폭을 크게 넓히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과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반사 이익’을 극대화, 지지율을 최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8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사망하자 유족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또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등 측근 참모들을 불러모아 아프간 사태와 현안 브리핑을 받기도 했다.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50여 차례의 비판 성명을 냈고, 일부 유족에겐 ‘45대 대통령 트럼프’ 명의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도 트럼프에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미 언론 악시오스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함께 지난 24~27일 성인 11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3%가 ‘바이든의 코로나 대응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지난 달 25일 조지아주를 찾았던 트럼프는 오는 9일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집회를 연다. 조지아·아이오와주는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경합주)로 꼽힌다. 트럼프가 다시 한번 바이든과 맞붙는다면 그의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다. 지난 달 21일 아이오와 매체 디모인 레지스터가 아이오와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 6월 조사 대비 12%포인트 급감한 31%였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 트럼프, 2024년 대선은 ‘리턴 매치’ 가능성

취임 8개월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최저치인 40%대로 떨어지자 워싱턴 정계에선 2024년 대선에서 ‘전·현직 대통령 간 재격돌’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바이든과 트럼프 외에 마땅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 에머슨대는 지난 8월 30일~9월 1일 전국 12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뽑겠다는 사람이 47%로, 46%였던 바이든보다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아닌 다른 인물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올 경우 바이든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바이든은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48%대 36%), 미트 롬니 상원의원(42%대 23%)을 상대로는 큰 격차로 이길 것으로 예상됐다. 사실상 트럼프 외에 공화당 내 굵직한 경쟁자가 없는 것이다. 지난 9월 15~16일 하버드대 미국 정치연구소(CAPS)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8%로, 바이든(46%)보다 2%포인트 높았다. 응답자 절반 이상(51%)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나은 대통령이었다고 답했다.

민주당 내에선 바이든이 고령(79세)이라는 이유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사실상 차기 후보로 여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와의 양자 대결 조사에서 해리스가 큰 차이로 밀리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극적 발언에 지지자들 열광하자… 트럼프, 음모론 유포하며 지지율 높여]

지난 24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애리조나주 매리코파 카운티에서 진행된 대선 투표용지 재검표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가 재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 애리조나 입법부를 장악한 공화당 상원이 감사 실시안을 의결해 진행된 재검표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은 작년 11월 카운티가 발표한 공식 집계치보다 99표를 더 얻었고, 트럼프는 261표가 줄었다.

하지만 이번 감사를 진행한 보안업체 ‘사이버 닌자’는 결과 발표 때 “(유권자) 2만3000명이 이사한 이후 (전 주소로) 우편 투표를 하는 등 비정상적 형태가 발견됐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작년 대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선거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P통신은 2만3000명에 대해 “(임시 거주지가 자주 바뀌는) 대학생, 군인 등이 대부분”이라며 “임시 장소로 거처를 옮겼더라도 정식 등록돼 있는 주소에서 합법적으로 투표했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서 바이든이 승리한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조지아·애리조나 등 지역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갖 문제 제기를 하고 불복 소송을 제기했지만, 줄줄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측은 ‘선거 사기’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NBC 등 미 언론들은 “자극적인 내용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에게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허위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며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결집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지지자들도 트럼프에 대한 ‘묻지 마 편들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모습이다. 바이든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세력에 맞설 ‘투사’로 트럼프만 한 인물이 없는 데다, 이대로 밀릴 경우 보수 진영이 지리멸렬하면서 앞으로 오랫동안 재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섀도 프레지던트

조 바이든이 올 1월 미 46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전히 현직 대통령인 것처럼 행동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작년 대선을 ‘사기’로 규정하고 선거 불복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그림자 대통령’으로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