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계 화두는 여성-흑인-MZ세대[죽기전 멜로디/이대화]

이대화 음악평론가 2021. 10.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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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업데이트된 롤링 스톤 명곡 500선에서 1위를 차지한 어리사 프랭클린. 최근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리스펙트’가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워너뮤직 제공
이대화 음악평론가
세상엔 정말 많은 명곡 리스트가 있다. 그중 가장 영향력 높은 리스트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지난 20년 동안 음악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체감한 경험에 의하면 롤링스톤이란 음악 잡지에서 2004년에 발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이다. 롤링스톤이 음악계의 타임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가 높은 데다 리스트도 아주 잘 뽑혀서 20년 가까이 업계 표준처럼 참고되어 왔다. 전설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과거 대중음악에 대한 큐레이션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고 할까. 어떤 명곡이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지 보는 재미와 위대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을 알아가는 재미가 고루 갖춰져 있다. 음악에 대해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 중 이 리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교과서처럼 공부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리스트가 9월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됐다. 뮤지션, 업계 종사자, 평론가 등 음악 전문가 250명이 모여 투표를 통해 새로운 순위를 만들었다. 서문을 보면 “2004년에 이 리스트가 나왔을 때는 아이팟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었고 빌리 아일리시는 3세였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리스트의 주안점이 이후 음악계의 달라진 시선을 반영하는 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순위를 봐도 그 점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달라진 시선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여성, 흑인, MZ세대다.

1위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1위는 ‘솔의 여왕’ 프랭클린의 ‘Respect’가 차지했다. 최소한의 ‘존중’을 요구하는 가사를 담고 있어 소수자 권리를 대변하는 노래로 오래 불려왔다. 특히 우먼파워의 상징처럼 자리 잡아 페미니즘의 송가로 불려오기도 했다. 최근 강하게 불고 있는 여성 운동 바람이나 작년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의 영향이 느껴진다. 이는 최근 그래미 시상식을 둘러싼 분위기와도 일치한다. 동시대 미국 음악계 리더들이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있는지 이번 리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500위 안에 힙합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최상위인 10위권만 보더라도 2004년 버전엔 전무했으나 이번엔 두 곡이나 포함됐다. 그중 레전드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는 무려 2위를 차지했다. 이전 1위가 포크 록 고전인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2위가 록의 전설 롤링스톤스의 ‘Satisfaction’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졌다. 사실 그동안 롤링스톤 리스트는 너무 백인 록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도 존 레넌, 비치보이스 등 로커들이 상위권에 잔뜩 포진했다. 래퍼 드레이크가 빌보드 10위 안에 9곡을 쏟아 넣는 시대에 언제까지 록의 황금기에만 영광을 몰아줄 것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했다. 이번엔 그 비판에서 벗어나 보자는 공감대가 투표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있었던 것 같다.

최신 노래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방탄소년단의 ‘Dynamite’는 발표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순위에 올랐다. 케이팝 급부상이 팝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 되긴 했지만 작년 히트곡이 곧장 등장한 건 의외다.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도 순위에 들었다. 2019년에 빌보드에서 19주 연속 1위를 차지해 역대 최장수 1위 기록을 갈아 치운 곡이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도 포함되었다. 아일리시는 이 노래가 발표된 2019년 인기를 얻어 다음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본상 4관왕을 휩쓰는 파란을 일으켰다. 새로운 고전이라면 더 이상 시간의 검증을 기다리지 않고 과감히 포함시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언제까지 1960, 70년대 고전들만 고집할 수 없으며 이번에야말로 MZ세대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겠다는 의지 같다.

이번 롤링스톤 리스트에서도 확인되지만 고전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음악적 훌륭함 못지않게 평가 주체와 그들을 둘러싼 시대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지금은 남성 중심의 음악계가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지배적이던 록 음악 중심 평론을 고루하다고 느끼고 있다. MZ세대와의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그들의 가치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단순한 명곡 리스트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영향력 높은 매체가 선정한 250명의 의견이라면 이것을 시대의 목소리로 해석해도 무리 없지 않을까. 좁게는 음악 평론, 나아가 음악계가 변화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대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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