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나쁜 벌레는 없다

부희령 작가 2021. 10.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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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따금 욕실에 붉은 실지렁이들이 출몰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그들을 발견하면 소름이 끼친다. 찾아보니 하수구 배관 주위의 침전물에서 사는 생물이란다. 세균을 옮길 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내 집에서 그들과 계속 마주치는 게 끔찍해서, 하수구에 뜨거운 소금물을 붓는다. 별로 효과가 없다. 이제 배관을 말끔히 씻어낸다는 강력한 화학 약품을 쏟아부어야 하나.

부희령 작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을 강조하는 불교를 공부할 때, 부질없는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내가 바퀴벌레를 연민할 수 있을까. 곤충과 거미 그리고 몇몇 무척추동물을 묶어서 지칭하는 ‘벌레’라는 말에는 이미 부정적 느낌이 숨어 있다. 먼 나라를 여행할 때 숙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를 낯선 벌레에 대한 공포로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연민은커녕, 호들갑스러운 혐오나 난폭한 분노로 이어지는 공포를 통제하기도 힘들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수만 혹은 수백만 년 동안 쌓은 경험이 유전자에 새겨져, 자신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존재를 경계하게 되었다고 가정한다. 흑사병 균을 옮기는 쥐벼룩이나 치명적인 독을 가진 거미, 뱀 같은 동물을 떠올려 보면 특정 생물에 대한 혐오와 회피 반응은 당연하다.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의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를 읽으면서, “진화는 사랑과 연민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반면에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고 밀접한 접촉을 유지해야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꽃에 관심을 기울여야 열매가 맺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다른 생물종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만약에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과 접촉이 진화를 통해 강화되면서 ‘생명애’로 발전했다는 설명에 이른다. 사랑이라니, 너무 인간적인 관점 아닌가. 땅이나 동식물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한낱 우월감이나 소유욕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벌레라 불리는 존재는 다른 생명체의 배설물이나 사체를 먹어 치우고 분해한다. 그들의 생존 자체가 죽은 유기물질에서 질소와 탄소 같은 물질을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이다. 사랑이나 연민 없이도 생명의 흐름을 원활하게 순환시킨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했고,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았다. 말라리아모기들은 강력한 살충제인 DDT에 대한 내성을 키웠으며, 갈색거저리 유충은 스티로폼을 분해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세계는 작은 경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눈은 부족하다.” 나는 또 밑줄을 긋는다.

동티난다는 말이 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건드려 해를 입게 된다는 의미다. 자연은 민감하면서 엄혹한 시스템이다. 수위를 넘은 욕망이 생명의 흐름을 교란시킬 때, 사태의 여파는 결국 누구에게 미치는가. 하수도에 화학 약품을 쏟아부으면서 그것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에 애써 눈을 감는 맹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자연에 관한 한 인간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다른 인간부터 긍휼히 여겨야 한다. 진정한 사랑과 연민은 그런 방식으로 확장될 것이다.

부희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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