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 떠오른 분식, 사라진 밀밭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2021. 10.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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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통계만 한 문헌도 없다. 한강 이북과 강원도 지역에서 벼 수확이 시작된 즈음에 숫자를 더듬는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가구 부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7.7㎏으로 2019년 소비량 59.2㎏보다 2.5% 감소했다. 이는 역대 최저치이며 1990년 소비량 119.6㎏에 견주어 절반 수준이다. 이를 다시 1인당 하루 쌀 소비량(평균)으로 따져보면 158.0g, 그러니까 하루에 밥 한 공기 분량의 쌀을 먹는 정도라는 뜻이다. 이렇게 먹고 어떻게 사나? 어떻게라니, 여러분의 짐작대로다. 밀가루가 있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은 34.2㎏이다. 1965년도의 11.5㎏에 견주어 세 배쯤 뛴 셈이다. 최근의 밀가루 연간 소비량은 약 200만t으로 추산한다(한국제분협회).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오늘날 한국인에게 밀가루는 쌀 못잖은 존재이다. ‘밀가루 음식’의 어마어마한 위세를 숫자로 다시 보자. 세계즉석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인스턴트 라면의 소비는 한 해에 중국 414억개, 인도네시아 125억개, 인도 67억개, 일본 56억개, 베트남 54억개, 미국 46억개, 한국 39억개 등의 순이다. 그런데 1인당 소비량은 한국이 75개로 세계 1위이다. 2016년 한국인은 라면을 빼고도 한 사람이 5일에 한 번은 다른 면류를 먹었다는 조사도 있었다. 2016년 1인당 연간 면류 소비량(국내 판매량+수입량)은 7.7㎏이고, 이를 그릇 단위로 환산(1인분 110g)하면 69.9그릇이다.

빵류는 어떨까. 조금 지난 보고이지만 2016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빵류 소비량은 90개로, 2012년 78개보다 12개 늘어났다. 나흘에 한 번은 빵류를 먹었다는 이야기다. 2016년 우리나라 빵류 생산 규모는 2조1308억원 규모였다(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때 가장 많이 소비되는 빵류는 찐빵·단팥빵 등이 포함된 기타 빵류였으며 케이크, 식빵, 도넛, 카스텔라, 파이가 그 뒤를 이었다. 이 흐름이 2021년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테다. 이상의 숫자는 한국인이 더 이상 ‘밥심’으로만 살지 않음을 단박에 드러낸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밀가루 음식, 곧 분식은 당당한 ‘제2의 주식’이다. 여기까지, 공개된 숫자를 확인하기란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하면 그다음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단 한 번도 오곡에 든 적 없던 밀 농업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까. 오늘날 북미건, 호주건, 그 어느 지역의 밀 수출국이건 밀을 가지고 한국을 겁박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자급’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일까. 여기 이어져야 할 말은 ‘식량 안보’인가, ‘식량 주권’인가. 이는 작고 좁은 한반도의 밀밭 한쪽에 고여 있어서는 안 될 엄중한 시무이다. 여기 걸린 말과 생각이 농촌과 농민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 그 상상력과 기획력에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이 정치의 계절이 불만의 계절이다. 관련한 어떤 의논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야박한 숫자를 본다. 1980년 이후 떨어지기만 한 밀 자급률은 2019년에는 0.7%에 지나지 않았다. 식량은 오늘 밤에 주문해 내일 아침에 배달받을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숫자는 또렷한데 머릿속은 하얘진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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