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좋았으니.. '정태적 기대'로 농사지으면 망해, 기업도 마찬가지

최성락 2021. 10.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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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마늘값 40% 뛰는데 배추는 폭락

올해 추석 즈음해서 계란, 파, 마늘 등 장바구니 물가가 많이 올랐다. 특히 마늘은 작년까지 수년간 내림세를 보이는 품목이었는데 유독 올해는 가격이 40% 이상 뛰었다. 반면 배추는 지난해 9월 한 포기에 1만원이 넘었지만 올해는 거의 절반 가격으로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게 농산물 가격의 특징이다. 배추는 2017년 6% 하락, 2018년 6% 상승, 2019년 13% 하락, 2020년 49% 상승, 그리고 올해는 폭락 추세를 보인다.

지난 2017년 말 배추 가격이 폭락하자 충남 홍성군의 한 배추밭에서 농민이 수확을 앞둔 배추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현재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가정하는 ‘정태적 기대’ 때문에 농산물 가격은 주기적으로 급등락을 반복한다. 조선일보DB

농산물 가격이 이렇게 널뛰기하는 이유를 경제학에서는 ‘기대 이론’으로 설명한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예측 또는 기대하는 방법으로 네 가지가 있다고 본다. 완전 예견, 정태적 기대, 적응적 기대, 합리적 기대다. 완전 예견은 미래를 족집게처럼 완벽히 예측하는 것으로,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정태적 기대는 현재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적응적 기대는 과거 추세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방식이다. 가령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주가가 하락한다’는 경험에 바탕해 미사일 발사 뉴스가 나오면 재빨리 주식을 파는 식이다. 합리적 기대는 모든 자료, 사회 각 부문 정보를 총동원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변동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정태적 기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배추 가격이 높았다면 농민들은 이 가격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하고 올해 배추를 많이 심는다. 그런데 많은 농민이 배추를 더 심으니 배추 생산량이 증가하고 배추 가격은 떨어진다. 배추 생산 수익도 줄어든다. 배추 가격이 떨어지고 수익도 적으니 다음 해에는 농민들이 배추를 심지 않는다. 다시 배추 생산량이 감소해 배추 가격이 상승한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걸리는 기간에 따라 그 주기의 차이가 발생할 뿐, 기본적으로 농축산물은 이런 추세에 따라 가격과 생산량이 변화한다.

우리는 농사뿐 아니라 삶의 많은 길목에서 정태적 기대를 한다. 지금 당장 어떤 직업이 좋다고 해서 그 직업을 장래 희망으로 삼는 것도 정태적 기대다. 지금 1등 기업이 앞으로도 그 기업이 1등 기업일 거라 믿고 투자하는 것도 정태적 기대이고, 지금 경쟁력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 판단하는 것도 정태적 기대다. 정태적 기대를 바탕으로 농사를 지으면 제대로 수익을 얻을 수 없듯, 정태적 기대를 바탕으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제학에서는 정태적 기대를 비합리적 기대로 본다. 제대로 미래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 기대를 하는 것이 최선이고, 못해도 적응적 기대는 해주어야 한다. 현재 상태와 과거의 추세, 변화를 고려해서 의사 결정을 해야지, 과거 어느 한 시점이나 지금 당장의 상태만을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해서는 곤란하다. 적응적 기대, 합리적 기대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사 결정 질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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