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일본 '호텔 선거', 한국 '수사 대선'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1. 10.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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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자민당의 새 총재로 기시다 후미오가 선출되면서 100대째 차기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집권당 의원들과 대의원만이 참여하여 호텔에서 치러진 선거가 정부수반을 사실상 결정지은 것이다. 국민의 여론은 참고사항일 뿐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한다. 내각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선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호텔선거’의 풍경은 정부형태를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로 바꾸자는 개헌논의가 잠복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참고할 만하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여전히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이유는 국민이 배제되는 권력교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행 권력구조의 본질을 이루는 대통령 직선제는 유신헌법의 통일주체국민회의나 5공헌법의 대통령선거인단이 이미지화한 ‘체육관선거’처럼 국민의 결정권이 무시되는 선거에 대한 저항의식의 결과이다. 국민눈높이가 강조되는 한국형 민주공화국에서 무시 못할 정치문화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형 대통령제에 대한 불만이 전혀 근거 없는 것만도 아니다.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대통령에의 권력집중을 지적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를 골간으로 한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강력한 일인체제인 총리정부제로 변이되어온 과정을 감안할 때 사실 권력집중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표피적 진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각제를 민주적 공화제로 묶어두는 핵심요소는 복수정당제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정당체제나 비례제 선거제도다.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영국이나 일본의 내각제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집권당의 총리에게 몰아주어 ‘선거독재’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는 반면 연동형 비례제를 채택한 독일의 경우 정당 간 연정이 다반사이다. 그나마 영국은 순수 소선거구제를 택한 결과 양당체제의 전통이 굳건한 데다 스코틀랜드 등에서 민족자치운동이 성장한 결과 사실상 다당제 구조라는 점에서 민주적 공화제의 토대는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일본은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결합시켜 사실상 자민당 일당독재에 가까운 정당체제를 고착화함으로써 호텔선거의 반민주공화적 문제점이 훨씬 심화된다. 자민당 내 파벌정치가 복수정당제의 가치를 보완한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일당독재체제인 중국마저도 공산당 내 정파의 존재를 들어 입헌공화국을 자처하는 점에 비춰 보면 그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형 대통령제의 취약점은 무엇일까? 최근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대선의 전개과정을 보면 윤곽이 드러난다. 단임제로 인해 정부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선거의 불안정성이 두드러진다.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다보니 국정에 대한 평가나 전망이 대선의 이슈가 되지 못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새로운 후보끼리 다투는 형국이다 보니 선거의 예측 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진다. 제대로 된 정치수업도 없이 이미지나 성공스토리만으로 하루아침에 유력한 후보가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유력한 후보들이 모두 고발된 ‘수사 대선’으로 전락함으로써 민주공화제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수반을 직접 선출하기를 열망하여 피땀 흘려 직선제를 쟁취했고 7차례의 정부교체를 이뤄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정작 대통령 후보의 운명은 국민보다 수사기관의 손에 달린 셈이 되고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일본의 호텔선거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쩌다가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근간이 수사 대선으로 오염되고 있는가?

무엇보다 정치와 법치를 혼동하고 정치의 문제를 형사사법의 문제로 해결하려는 정치문화나 정치제도의 탓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선거에서 후보검증의 주요한 수단이 고소나 고발이 되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정치가 사법화되는 배경에는 자유로워야 할 선거를 공정의 미명하에 과도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선거법제와 형사법제가 자리하고 있다. 일상을 과도하게 범죄대상으로 삼고 있는 형사과잉의 법제가 정치를 언제든지 형사절차로 소환하고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기는 또 다른 배후로 언론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공론을 활성화해서 국민의 선택을 도와야 할 언론기관의 무능과 과잉정치화가 정치 문제를 형사사법의 문제로 부추기는 동력이 되고 있다. 왜 그토록 많은 게이트나 의혹이 선거 때만 되면 봇물처럼 쏟아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권자 국민의 자리를 왜 수사기관이나 정치권력화한 언론기관이 차지하게 되는지를 곰곰이 되새겨볼 시점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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