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집을 떠난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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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홍길동전' 단원의 제목이 '집 떠나는 홍길동'이었다.
농경사회인 만큼 정착생활에 가치를 두는 분위기에서 집을 떠나는 일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홍길동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큰 일을 이루고자 던진 출사표가 명문이 되고 안 되고는 문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군사를 이끌고 치러낸 성과에 달려있는 법, 집 떠나는 홍길동은 멋있었으나 집 떠난 홍길동은 왠지 찜찜한 이유를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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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적서 차별에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이 지방 관아의 학정으로 옮겨가고 중앙 정부의 무기력함까지 파헤치는 데 이르면 당대 사회의 문제를 잘 짚어낸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지방관아를 칠 때도 “함경 감사가 탐관오리로 준민고택하여 백성이 다 견디지 못하는지라. 우리들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로 사설을 길게 빼는 것은 그가 의적임을 분명히 하려는 처사이다. 관가의 재물을 약탈하는 게 아니라 백성들로부터 빼앗아간 것을 되돌려 받는 정당한 절차라는 뜻이다.
그러나 홍길동의 뒤를 좇다 보면 수상쩍은 행적도 제법 있다. 동굴 속 괴물을 물리친 것까지는 좋지만 괴물이 납치해간 여자들을 시첩으로 받아들인다. 또, 또렷한 명분 없이 해인사를 털어서 ‘홍길동이 합천 해인사 털어먹듯 한다’는 속담을 만들어냈다. 홍길동이 정승집 자제임을 내세워, 밥에 모래를 넣었다는 생트집으로 해인사를 유린하는데, 천출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데 분노하던 인물의 행보로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국가기강이 무너진 것을 조롱하던 그가 병조 판서를 제수받고는 조용히 물러나 율도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수상쩍다.
큰 뜻을 펼치려면 집을 나서야만 한다. 때가 되면 더 큰 무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집을 떠났는지 잠깐만 놓치고 나면 자가당착을 면하기가 쉽지 않다. 적서차별에 통분하던 사람이 정식 혼례도 올리기 전에 첩장가부터 들고, 폭압에 저항하던 손으로 약한 이를 짓밟는 ‘내로남불’이 너무도 쉽게 펼쳐지고 마는 것이다. 큰 일을 이루고자 던진 출사표가 명문이 되고 안 되고는 문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군사를 이끌고 치러낸 성과에 달려있는 법, 집 떠나는 홍길동은 멋있었으나 집 떠난 홍길동은 왠지 찜찜한 이유를 곱씹어볼 일이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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