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접종자 차별" "기본권 침해".. '백신 패스' 도입 놓고 논쟁 심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본권 침해..위헌소송대상" 국민청원도
전문가 "도입 필요하지만 미접종자 피해 최소화해야"
정부 "도입 여부 등 아직 미결정 사항"
30일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등에 따르면 정부는 위드 코로나 전환에 대비해 백신 패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백신 패스란 접종 완료자 등에 한해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거나 행사 등에 참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덕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독일에는 접종 완료자, 완치자,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백신 패스가 있는데, 우리도 이를 적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히며 백신 패스 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도입 시 미접종자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 필요할 듯…“미접종자 중심 유행 차단 목적”
향후 백신 패스가 도입될 경우, 접종 완료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별도의 카드 등을 통해 백신 접종 완료 를 인증할 것으로 보인다. 미접종자는 PCR(유전자 증폭검사) 음성확인서를 지참하지 않으면 다중이용시설 등의 출입이 제한될 전망이다. 앞서 백신 패스를 도입한 국가들은 짧게는 24시간 전, 길게는 72시간 전 발급 받은 음성확인서를 인정하고 있다. 이 방식을 적용할 경우 미접종자가 다중이용시설 등을 이용하기 위해선 1주에 2∼3번가량은 PCR 검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백신 패스 도입 관련 질의에 “국내에서도 하게 된다면 미접종자는 PCR 음성확인서를 지참하지 않으면 다중이용시설이나 행사 등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접종자의 경우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화율이나 치명률이 높고, 또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한 유행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 반장은 “다만 이 과정에서 접종 기회를 원천적으로 부여받지 않았던 저연령층이나 학생층에 대한 부분은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어서 일정 연령 이하에 대해서는 이런 백신 패스의 제한 조치를 예외로 하는 등의 검토도 함께 이뤄질 필요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백신 패스를 도입할 경우 백신 부작용 우려 등으로 접종하지 않은 이들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백신 패스 반대합니다’ 청원에는 이날 오후 5시 기준 2만1000여명의 동의를 얻어 국민청원 사전 동의 기준(100명 이상)을 충족한 상태다. 청원인은 “개인 질환, 체질, 알레르기 부작용으로 백신 (접종) 완료를 못 한 분들도 있는데 백신을 무조건 강제할 수 있느냐”면서 “단체 입장 제한이라는 페널티는 사회 분열과 인간 기본권 침해로 위헌소송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백신 패스 도입에 나선 국가들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이탈리아의 경우 백신 접종 완료자 등에게 발급하는 증명서인 ‘그린 패스’ 제도 도입을 기점으로 백신 거부 시위가 본격화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6일부터 실내 음식점과 문화·체육시설 출입 시 그린 패스 지참을 의무화한 데 이어 이달 1일부터는 버스·기차·페리·여객기 등 모든 장거리 교통수단 이용 때도 그린 패스를 제시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 중이다. 프랑스에서도 다중이용시설 입장 시 접종 증명서 제출 의무화에 반발하며 4주 연속 시위가 열린 바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위해 백신 패스 도입은 필요하지만, 도입 시 미접종자들이 겪게 될 불편 등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패스는 단계적 일상 회복 절차에선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면서 “백신 패스는 백신 인센티브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국내 18세 이상 1차 접종률이 88% 수준에 달하는 만큼, 미접종자들이 백신 자체를 불신하기보단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으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좀 더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미접종자들은 (접종을) ‘안 했다’라기보다는 못한 분들이 더 많을 것 같다”면서 “그분들에 대한 페널티보다는 (접종을) 완료하신 분들에 대해 사적 인원 모임 제한을 좀 더 많이 풀어주거나 이용시설, 이용시간을 더 늘려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유도하고, (백신을) 맞지 않은 분들은 최대한 다중이용시설에 가지 않으면서 방역을 잘 지키는 쪽으로 유도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천 교수는 “‘(미접종자들에게) 병원 등 일상에서 꼭 필요한 부분은 이용을 하되, 사람이 많이 모이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환경은 제한을 하겠다’ 정도로 발표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백신 패스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향후 도입 결정 시 정부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정 교수는 “백신 패스의 적용대상과 범위를 순차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 교수는 “미국이나 해외의 경우 백신 불신론자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부작용이 무섭거나 과거에 문제가 있었고 1차 접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안 맞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분석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아직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로,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 1일 발표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안에도 백신 패스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을 예정이다. 손 반장은 이날 출입기자단 설명회에서 백신 패스와 관련해 “도입 여부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내용은 미결정 사항”이라면서 “외국의 각종 사례를 수집해서 분석하는 중인데 대상, 운영방안 등 아직 검토해야 할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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