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이 백신이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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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다음날 아침, 걱정 담긴 음성으로 조심스레 나를 깨우는 고3 수험생 딸아이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잠결에 어렴풋이 내가 꼭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기억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다정하게 나를 깨우던 엄마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몸이 평소 같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가슴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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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못 일어나겠어요? 아파요? 많이 힘들어요?"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다음날 아침, 걱정 담긴 음성으로 조심스레 나를 깨우는 고3 수험생 딸아이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잠결에 어렴풋이 내가 꼭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기억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다정하게 나를 깨우던 엄마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몸이 평소 같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가슴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빈틈없이 행복한 아침이었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다고들 하지만, 가족만큼 운명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태어날 가족을 선택할 수 없으며, 가족으로부터 영영 벗어날 수 있는 이도 없다. 굳이 실존주의 철학자의 이름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 대목에 있어서만큼은 ‘던져진 존재’, ‘피투성’(被投性)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가족 안으로 ‘던져진다’.
상담실을 찾는 성인 내담자들의 고통은 대부분 가족에 그 기원이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꼭 폭력적인 부모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보통 부모가 자녀에게 오래도록 고통을 주기도 한다. 냉담한 부모만큼이나 애정이 지나친 부모도 자녀에게는 해롭다. 도를 넘는 관심은 간섭으로 이어지고, 다 자란 성인이 된 자녀를 홀로 서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높은 기대와 지나친 관심이 동시에 주어질 때, 어떤 이는 죄책감과 자책으로 뒤엉켜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받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분노와 적개심에 찬 공격성을 타인을 향해 표출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운명지어진 사람들 간의 관계는 왜 이다지도 어려울까? 부모가 어른답게 성숙한 모델이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공부를 잘해야만, 버젓한 직장을 가져야만, 그럴싸한 집안과 혼사를 맺어야만 자녀를 인정하는 부모라면, 그 사랑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녀에게는 ‘조건부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허울뿐인 사랑에 얽매인 가족 안에서 성장하는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두렵기 마련이며, 불안한 마음으로 임하는 일의 결과가 좋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부모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나중에 자녀에게 손익계산서를 내밀며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질 요량이라면 말이다. 사랑은 받을 것을 셈하고서 꿔주는 ‘빚’이 아니다. 참사랑은 주는 그 자체로 기쁨이고 사랑을 주는 순간 이미 행복하기에, 자신이 주는 사랑이 꼭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아도 억울하지 않은 법이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고 흐뭇해서 이미 받아야 할 보답은 다 받은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조건 없이 준 사랑은 헛되지 않으며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사랑의 법칙이다.
사랑은 생각처럼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다. 함께하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계산 없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부모로부터 조건 없이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라면, 몸에 밴 습관처럼 저도 모르게 그 사랑으로 부모를 대할 것이다.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말뿐인 사랑’이 아니라, 실재하는 ‘경험으로 주고받는 사랑’이 오래도록 가족을 불행으로부터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백신일 것이다.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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