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갈등 재연?..안동 호계서원서 퇴계 위패 사당 밖으로

김진호 2021. 9. 30. 21: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400년 묵은 병호시비(屛虎是非) 마침표로 여겨졌던 경북 안동시 호계서원(虎溪書院) 위패 복설(復設) 문제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진성이씨 상계문중운영위원회는 지난 10일 "호계서원 복설로 안동 유림 간 새로운 분쟁이 야기되고 있다. 사풍(士風) 진작에 힘써야 할 서원이 시비와 분쟁의 장이 된다면 존립 가치가 훼손된다"며 퇴계 위패 반환을 요청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 요약
계상서당 뒷편서 불태워 땅에 묻는 소송을 끝으로 흔적 지워
앞서 진성이씨 상계문중, 호계서원에 퇴계 선생 위패 반환 요청

진성이씨 상계종택 운영위원회 및 문중 관계자들이 호계서원 사당인 '존도사(尊道祠)'에서 퇴계 선생 위패를 사당 밖으로 모셔 나가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400년 묵은 병호시비(屛虎是非) 마침표로 여겨졌던 경북 안동시 호계서원(虎溪書院) 위패 복설(復設) 문제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30일 진성이씨 상계종택 운영위원회 및 문중 관계자 20여 명은 호계서원 사당인 '존도사'(尊道祠)에서 고유제를 지낸 뒤, 퇴계 이황 위패를 사당 밖으로 모셔 나갔다.

퇴계 위패는 계상서당 뒷편 정갈한 자리에서 불태워 땅에 묻는 '소송(燒送)'을 끝으로 흔적을 지웠다.

이날 퇴계 위패를 사당 밖으로 모셔 소송한 것은 복원된 호계서원에 위패를 복설한 이후에도 계속된 유림 간 갈등의 요소를 없애겠다는 퇴계 종손 결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예안유림들은 이근필 퇴계 종손에게도 서한문을 보내 위패 철폐를 요구했다.

진성이씨 상계문중운영위원회는 지난 10일 "호계서원 복설로 안동 유림 간 새로운 분쟁이 야기되고 있다. 사풍(士風) 진작에 힘써야 할 서원이 시비와 분쟁의 장이 된다면 존립 가치가 훼손된다"며 퇴계 위패 반환을 요청했다.

호계서원 운영위원회는 이에 대해 "조선 500년 역사에 왕명에 의하지 않고 주벽(主壁)의 위패를 퇴위한 경우는 없다. (호계서원 복설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국가 사업인 동시에 도내 유림들의 공의에 의해 진행된 사업이다. 당회를 열어 공론을 물을 충분한 시간과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1개월 말미를 달라는 답신을 보냈다.

진성이씨 상계종택 운영위원회 및 문중 관계자들이 호계서원 사당인 '존도사(尊道祠)'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말 호계서원 복설 고유제 당시만 해도 영남유림 간 해묵은 갈등은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위패 복설을 반대하는 예안유림과 호계서원 간 갈등은 이후에도 1년여간 이어졌다.

특히 지난 4월 복설 후 첫 춘계 향사 때는 유림들이 몸싸움까지 벌여 경찰이 제지하는 소동까지 빚었다.

'병호시비'는 퇴계를 모신 호계서원에 제자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을 배향하는 과정에서 위차(서열) 문제가 불거지면서 발생한 3차례 시비를 말한다.

학봉과 서애 위패 중 누구 것을 상위에 놓을 것인가를 두고 문중끼리 또 제자들 간 400여 년간 다퉈왔다.

이 갈등으로 안동유림은 학봉을 모신 호계서원과 서애를 모신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갈라져 따로 전통을 이어왔다.

진성이씨 상계종택 운영위원회 및 문중 관계자들이 호계서원 사당인 '존도사(尊道祠)'에서 고유제를 지낸 후 퇴계선생 위패를 사당 밖으로 모셔 나가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지난해 경북도 중재로 류성룡을 퇴계 위패 동쪽에, 김성일을 서쪽에, 그 옆에 김성일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기로 합의하면서 이 갈등이 해소된 듯 보였다.

호계서원은 조선 시대 대표 서원 중 하나다. 1573년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창건된 후 숙종 2년(1676년) 사액되면서 호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됐다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어졌다.

이마저도 안동 댐 건설로 1973년 임하 댐 아래로 옮겨졌지만 습기로 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 유림은 다시 이건(移建)과 함께 서원 복설을 요청했다.

경북도는 2013년부터 총사업비 65억원을 들여 도산면 서부리로 이건하고, 복원도 추진해 2019년 말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호계서원을 복설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호계서원은 1만 부지에 13동 93칸으로 지어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kjh9326@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