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오는데 왜 못 칠까
[경향신문]
규정 이닝 채운 투수 중 구속 최저
옆구리에 숨겼다 나오는 손 ‘깜깜’
오른발 길게 뻗어 타자 눈앞 ‘바짝’
헛스윙 유도하는 칼날 제구 ‘팍팍’
KBO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29일 기준 모두 19명이다. 그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SSG의 윌머 폰트로 속구 평균 구속이 149.7㎞나 된다. 반면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는 삼성 좌완 백정현(34)이다. 사이드암스로 투수인 KT 고영표의 137.1㎞보다 조금 더 느린 136.6㎞의 평균 속구 구속을 기록하고 있다. 2007년 삼성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백정현은 올해로 15번째 시즌을 치르는 베테랑이다.
구속은 규정이닝 투수 중 가장 느리지만 성적은 최상급이다. 13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있고, 평균자책 2.60은 두산 미란다(2.45)에 이어 리그 2위다. 국내 투수 중 가장 낮다. 후반기 들어 가장 안정감 있는 투수 중 한 명이다. 7~8월 동안 5승0패, 평균자책 1.16으로 데뷔 첫 월간 MVP에 선정됐다. 지난 5월26일 NC전 선발승 이후 16경기에서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10승을 거뒀다.
백정현이 리그 최저 구속으로 최고 활약을 펼치는 비결은 ‘DEC’ 3가지로 요약된다. 디셉션(숨김동작), 익스텐션(공을 놓는 순간, 마운드 플레이트와의 거리), 커맨드(제구)다.
백정현의 가장 큰 무기로 디셉션이 첫손에 꼽힌다. KT 이강철 감독도 “백정현의 디셉션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좌완 투수로서 공을 끌어올릴 때 손의 위치가 타자에게 보이지 않는 왼쪽 옆구리 뒤에서 움직인다. 뒷스윙의 크기가 작은 상태에서 손이 어깨 위로 빠르게 넘어오기 때문에 타자에게 공을 판단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백정현의 디셉션이 가능한 것은 오른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과 관계가 깊다. 백정현은 주자가 없을 때 오른 다리를 들어올린 이후 왼 다리로 잠시 버텼다가 오른발을 타자 쪽으로 길게 뻗는 투구 동작을 한다. 이 과정에서 중심 이동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하체가 버텨주는 동안 팔스윙을 늦출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 동안 디셉션이 가능하다.
여기에 오른발의 움직임은 백정현 투구의 익스텐션을 상당한 수준으로 늘리는 효과를 낳는다. 익스텐션의 증가는 디셉션과 어우러져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어렵게 만든다. 공이 느리지만, 이를 타자들이 판단할 시간은 강속구 투수 못지않게 짧기 때문이다.
또 올 시즌 업그레이드된 커맨드가 백정현을 더욱 까다로운 투수로 만든다. 삼성 허삼영 감독은 “제구가 좋아지면서 상대 타자의 파울존을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허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타자들은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코스에 방망이를 잘 내지 않는다.
‘파울존’은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에서 공 한두 개 빠진 공간이다. 스윙을 끌어내지만 정확히 맞지는 않는 공간으로 이곳을 공략할 수 있다면 볼카운트 싸움이 상당히 유리해진다. 물론, 조금만 빗나가도 타자의 ‘강점’을 향하기 때문에 완벽한 제구가 필수다. 삼성 포수 강민호도 백정현에 대해 “공을 던지는 코스가 정말 기막히다”고 칭찬했다.
백정현은 지난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만 부상 때문에 1년 늦춰졌다. 아쉬운 기다림을 거쳐 더 농익은 투구를 펼치는 중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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