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균씨 "독거노인에게 따뜻한 밥상, 그만한 보람 없지요"
[경향신문]
소방정비회사 퇴직 이후 결식 우려 어르신들 찾아가 보살펴
오르막·지하방 누비며 불편 사항까지 챙기는 ‘든든한 말벗’
30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좁은 언덕길을 20여분 오르내리자 눈앞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신정균씨(83)는 “이제 절반 왔다”고 말했다. 다시 정릉종합사회복지관에서 30여분을 오르내린 끝에 지하로 이어지는 한 다세대주택 앞에 도착했다. 신씨가 5년째 도시락을 배달하는 A씨의 집이다. 뇌경색 수술을 받은 A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낸다. 익숙한 듯 지하방으로 내려간 신씨는 복지관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내밀었다. 독거노인인 A씨의 점심이다. 침대에 누워있던 A씨는 “앉으려고 몸을 일으키기만 해도 머리가 흔들린다”며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신씨는 A씨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었다.
신씨가 다음 찾은 곳은 하반신을 거의 쓸 수 없는 B씨의 집이었다. 신씨는 집 출입구 비밀번호를 자연스럽게 누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열려있는 현관문을 열고 신씨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TV화면만 반짝이는 방 안에 들어선 신씨는 “왜 어둡게 있어?”라며 불을 켰다. 배낭 안에 담긴 따뜻한 도시락도 B씨에게 전달했다. 신씨는 B씨에게 “날이 괜찮으니까 보행보조기라도 짚고 슬슬 나가보라”고 말했다. 이어 “내일이 10월1일이야. 내일도 내가 올 거니까, 다음달에 봐”라며 농담을 던졌다.
신씨는 성북구가 운영하는 어르신 일자리 ‘노노케어’의 초창기 멤버다.
성북구는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자 자격심사에서 탈락했지만 결식 우려가 있는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노노케어’ 도시락 배달사업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어르신이 어르신을 돌보는’ 사업이다.
그는 소방정비회사를 퇴직한 2012년 3월 이후 지금까지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가장 오래 일한 덕에 5년 전부터는 ‘반장’ 직책도 얻었다.
배달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달 10회 기준 27만원의 수고비를 받는다. 신씨는 그러나 정해진 횟수 이상 배달을 하고 있다. 10회를 초과하는 배달은 ‘자원봉사’인 셈이다. 그 역시 고령이지만 다른 참여자들이 가기 힘들어하는 산비탈길이나 복지관에서 먼 집의 배달을 주로 맡는다. 그의 ‘배달’은 단순히 도시락만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식들이 다 미국에 가고 지하방에 혼자 살던 C씨라고 있었는데 집 안에 냄새가 너무 나더라고. 그런데 C씨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 집을 한 달을 치웠어.”
신씨는 오랜 기간 소방정비 일을 해온 덕분에 간단한 집수리도 가능하다. 대상자의 불편사항을 복지관에 전달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그가 10년째 도시락 배달일을 하는 이유는 일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신씨는 지난해 부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이후에도 쉬지 않고 배달일을 한다. 처음에는 말리던 자녀들도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신씨의 목표는 살아있는 날까지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다. ‘노노케어’ 사업에 정년은 없다. 그는 “(도시락 배달을 위해) 길을 천천히 오르내리니 그 자체로 운동이 되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지”라고 말했다. 신씨는 10월2일 ‘노인의날’을 맞아 1일 성북구청장 표창장을 받는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신정균 어르신은 복지영역에서 노인의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주시는 대표적인 분”이라며 “성북구의 다양한 복지정책이 많은 분들에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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