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강경파에 스러진 '로힝야의 목소리' [시스루 피플]
[경향신문]
방글라데시 난민촌서 활동
무장단체 공격받은 뒤 숨져
‘평화적 해결’ 주장한 지도자
백악관서 트럼프와 만남도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로힝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29일 괴한들에게 목숨을 잃은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 모히브 울라(50)는 2년 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 당시 이미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얀마군에 의해 짓밟힌 로힝야족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지만 도리어 로힝야족 무장단체의 표적이 된 것이다. 로힝야족 강경파와 무장단체는 난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울라의 주장에 반대하며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들을 공격해왔다.
더데일리스타 등 방글라데시 매체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경찰은 목격자 증언을 인용해 괴한 4~5명이 울라에게 총을 쐈다고 밝혔다.
아라칸로힝야평화인권협회(ARPSH)를 이끌던 울라는 이날 집무실 밖에서 다른 난민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공격을 받았다. 이후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시설로 옮겨졌지만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방글라데시 경찰은 범인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지만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들은 로힝야족 무장단체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나우킴 ARPSH 대변인은 “ARSA가 지속적으로 울라에게 살해 협박을 해왔다”고 밝혔다.
울라는 4년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에서 식물학자이자 교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2017년 미얀마군의 대학살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아이에게도 총구를 겨누는 미얀마군의 만행을 목격한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꼬박 8일을 걸어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도착했다.
그러나 난민촌 또한 지옥이었다. 작은 오두막들로 이뤄진 난민촌에서 목숨을 겨우 건진 생존자들은 학살의 기억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울라는 난민들을 일일이 만나 미얀마군의 살인, 강간 등 만행을 기록하고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의 조사를 도왔다. 또 ARPSH를 설립해 방글라데시에 있는 110여만 로힝야 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미얀마군 대학살 2주년인 2019년엔 대규모 로힝야족 집회를 기획해 20만명이 참여했다. 그해 미국 백악관에 초청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실질적인 민족 지도자로 인정받게 된 울라는 강경파에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알자지라는 방글라데시 수용소에 있는 강경파 무슬림들은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왔다면서 무장한 남성들이 권력싸움을 벌이고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이슬람 규범을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마약 사업까지 벌이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인질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라의 죽음으로 로힝야족 무장단체의 활동이 더 거침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나크시 간굴리 휴먼라이츠워치 남아시아지부장은 “울라의 죽음은 난민 캠프에서 자유를 외치고 폭력에 맞서는 이들에게 닥친 위험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방글라데시 당국은 즉시 살해 배후와 난민 캠프 내 로힝야족에 대한 공격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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