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차 기사 AS 작업 중 감전사.."삼성전자서비스 실적 압박 탓"
[경향신문]
좁은 공간서 세탁기 옮기다
수도 밸브 파손돼 감전 참변
“회사 재촉에 위험 작업 감수”
노조·동료들 “안전은 뒷전”
‘세탁기에서 전기가 느껴진다’는 접수를 받고 삼성전자서비스의 가전제품 수리기사 윤승환씨(44)가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에 방문한 것은 지난 28일 오후 1시30분쯤이었다. 윤씨가 수리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전산 등록을 한 시각은 오후 1시41분, 감전돼 쓰러진 윤씨를 보고 고객이 119에 신고한 때는 오후 1시54분이다. 불과 13분 안에 사고가 발생했고, 윤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금속노조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 배경에 삼성전자서비스의 실적 압박과 미흡한 안전대책이 있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윤씨와 삼성전자서비스 디지털양천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윤씨가 수리를 하러 간 고객 집은 세탁기가 베란다에 있었는데 세탁기를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공간이 협소했다. 아파트가 노후해 전기 차단기를 내릴 수 없었고, 작업을 하려면 세탁기 전선을 콘센트에서 빼야 하지만 콘센트는 손이 제대로 닿지 않는 안쪽에 있었다. 전선을 빼고 작업이 가능하도록 비좁은 공간에서 세탁기를 밀면서 이동해야 했다. 세탁기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세탁기 뒷부분의 급수 밸브가 파손돼 물이 튀었고, 이로 인해 윤씨가 전기에 감전됐다는 게 노조 추정이다. 노조는 “사고 당시 혼자서 작업했던 상황이라 정확한 사고 원인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사고 장소와 제품 위치 등을 확인한 동료 노동자들은 도저히 안전하게 작업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수리 노동자의 감전 사망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윤씨는 8년가량 근무한 숙련된 수리기사였다.
노조는 윤씨를 비롯한 수리 노동자들이 회사의 실적 압박에 시달려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며 작업해왔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몇 건을 처리했는지를 말하는 ‘처리력’, 첫 방문 한 번에 수리를 완료했는지를 말하는 ‘초도 수리율’ 등을 따져 등급을 매기고 진급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위험한 작업환경은 뒷전이 됐다는 것이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서비스 센터들은 하루에 9건을 처리하면 1만원, 11건을 처리하면 2만원을 주는 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실시간으로 처리 현황을 공유하면서 “열외자가 많다. 처리력 집중해달라”는 식으로 기사들에게 공지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측은 “직원이 불의의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회사도 황망하고 비통한 심정”이라며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밝혔다. 다만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경찰 등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이후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노조 의견도 경청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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