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비리 제보자에 손배 청구한 대법원, 정의의 보루 맞나 [사설]

2021. 9. 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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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법원이 1200억원대 규모의 전자법정 입찰비리를 언론 등에 제보한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제보자는 비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항소심은 “피고인이 내부비리를 제보해 비밀리에 저질러지던 범행의 전모가 밝혀졌다”며 선고를 유예했다. 형법상 선고유예는 2년이 지나면 유죄 선고가 없었던 것과 똑같은 효력을 갖는다. 대법원은 하급심 법원이 행위의 공익성을 인정해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시민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나선 것이다. 사법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 불리는 대법원이 할 일인가.

전자법정 입찰비리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공무원들이, 전직 법원 공무원이 만든 업체와 짜고, 영상재판에 필요한 장비를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예산을 빼돌린 사건이다. 2018년 8월 경향신문 보도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며,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기소돼 10여명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 유죄가 확정된 관련자들 가운데 5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면서, 입찰비리 사실을 경향신문에 제보한 이모씨를 포함시켰다. 법원행정처는 “제보자가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규정한 공익신고자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공익신고자라 하더라도, 민사상 손배 책임을 면제하는 법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며,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 지휘를 받아 사법행정 실무를 관장한다. 대법원이 최고 법원으로서 공익신고자보호제도의 취지를 고려했다면, 재량권을 발휘해 제보자를 손배 청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었다. 최고 법원과 사법행정기구가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서 법 규정 탓만 하다니 구차하다. 법원행정처는 또 이씨 등 5명에게만 소송을 낸 데 대해선 “시효가 임박한 사람들을 우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곤 경향신문 보도(9월29일)가 나가기 전날(28일) 추가로 12명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제보자를 겨냥한 ‘보복성’ 제소가 아님을 보여주려 한 인상이 짙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신고자가 비리에 연루됐다 하더라도 책임을 감면함으로써 공익신고를 장려하고 부패행위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법원행정처가 제보자 이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이같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정신에 역행한다. 법원의 비리에 대해선 누구든 입을 다물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장을 지휘해 이씨에 대해 제기한 소를 즉시 취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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