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학습, 셀프 복습, 벌써 4학기째..좁은 취업문이 내게 열릴까요 [오늘도 '방구석' 등교(하)]

조해람·강한들·김혜리 기자 2021. 9. 30. 2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습 한번 못했는데 졸업이 '눈앞'

[경향신문]

호텔제과제빵과 1학년 이채은 씨가 온라인 수업을 위해 노트북을 켜놓고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론 강의로 실습 대체한 제빵학과 1년생
화면 속 교수에 노래 부르는 뮤지컬 전공자
배달된 장비로 가족과 연습하는 간호대생
“현장 가면 어쩌지…학원 갈까” 앞날 걱정

커피머신에선 위잉 하며 원두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커피향이 났다. 그 옆엔 거꾸로 뒤집힌 테이크아웃 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지난 23일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중원청소년수련관 1층 구내 카페에서 만난 이채은씨(19)는 개장 준비로 분주했다. 주 고객층인 센터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 전까지 준비를 마쳐야 한다. 집게로 찝은 머리에 갈색 앞치마 차림을 한 이씨는 32석 규모 카페를 구석구석 청소하고 주방에는 재료를 세팅했다.

오전 9시, 개장 시간이 되자 이씨가 갑자기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김포대 호텔제과제빵과 1학년인 이씨는 카페 일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교수가 이름을 부르면 채팅창에 ‘네’를 입력한다. 무선 이어폰 한쪽을 귀에 끼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로비를 향한다. 손님이 들어오면 즉각 뛰어나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능숙하게 결제하는 사이 노트북에서는 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강의명은 ‘제빵실습 2’이지만 온라인 이론수업으로 진행된다. 10월에 일부 대면수업이 열릴 수도 있다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날은 카페·베이커리 창업에 필요한 주방시설과 제빵의 역사 등에 관한 수업이 이어졌다. 이씨 옆에 놓인 제빵 실습 교재 ‘마스터베이킹’은 깨끗하다. 오전 9시30분,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유 데우는 냄새와 원두 가는 소리가 카페를 채웠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자니 힘들지만 일을 놓자니 불안하다. 올해 입학한 이씨는 한 번도 실습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캠퍼스로 등교하는 느낌도 궁금하지만 당장의 실무 경험이 더 급하다. “취업은 다 실전이에요. 현장에서는 센스 있고 손 빠른,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요. 자격증도 필수인데 실습을 못하니….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기죠.”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비싼 학원비를 따로 내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이씨는 카페에서 틈틈이 제빵 실기를 연습하며 자격증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모니터 앞 노래 연습…간호실습은 가족에게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연기 전공자인 이기화씨가 24일 경기 고양의 한 뮤직스튜디오에서 화상을 이용해 연습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코로나19의 피해는 대학생 사이에서도 동등하지 않다. 실습 경험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전문대·예술대 등 학생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뮤지컬연기를 전공하는 이기화씨(24·청강문화산업대 2학년)의 캠퍼스는 경기 고양시의 2평 남짓한 연습실이다. 피아노와 작은 탁자가 놓인 방에 이씨와 기자가 나란히 앉으니 공간이 꽉 찼다.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하는 전공수업을 듣기 위해 연습실을 빌리는 데 한 달에 20만~30만원은 든다. “이게 되게 웃겨요. 사람 눈이 아니라 노트북 카메라 보면서 연습하는 느낌이.” 건반을 하나씩 누르며 성대를 푼 이씨는 녹화 강의를 틀고 복습을 했다. “다시 찾지 못할 내 꿈….” 뮤지컬 곡과 대사를 연습하는 이씨의 등 뒤로 6분할 된 노트북 화면이 재생됐다.

예체능 전공은 해당 분야 전문가인 교수 앞에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그 기회가 막혔다. 안무 비대면 수업에서 교수의 상체만 보여서 곤란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오디션 등 기회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선후배와 인맥을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수업만 들으러 학교에 온 게 아니잖아요. 그러려면 학원에 가면 되죠. 그런 네트워크 문제가 제일 불편해요.” 외부에서 대외활동을 하는 이씨는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코로나19로 공연업계 자체가 어려워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기회의 양극화가 심해진 것 같아요.”

간호학과 2학년 송하일씨가 보관하고 있는 간호 실습 도구. 강한들 기자

간호학과 2학년 송하일씨(23·동아보건대학교)도 걱정이 크다. 학교와 실습 과정이 연계된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실습생들이 왔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서 있기만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호사 면허가 있으면 취업은 되겠지만 송씨는 ‘그 이후’가 불안하다. “현장에서 그냥 몸으로 체득해야 되는 상황인데, 의료계에서는 잘하든 못하든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연결될 수 있어요. 이렇게 공부해서 내가 간호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돼요.”

학교에서 보내준 실습 도구는 박스에 담겨 송씨의 자취방 한쪽에 놓여 있다. 원래대로라면 실습실에서 학생들끼리 서로 맥박이나 혈당을 체크할 때 쓰여야 할 도구다. 실습수업이 막힌 지금은 친구들끼리 날짜를 잡고 모여 연습하거나, 경기 양주시에 있는 본가에 갈 때 키트를 들고 가서 가족들을 상대로 연습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간호사 일에 열정이 있어 스스로 기회를 찾아다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코로나19가 만든 ‘대학생 내부 격차’, 갈수록 더…

예체능 전공, 실습 많은 전문대서 더 심각
취업·오디션 등 이어줄 인맥·정보도 막혀
전문대생들 31% “가장 손해는 수업의 질”
4년제 비해 인프라 등 열악 ‘양극화’ 우려

실습 위주 학과가 많은 전문대 학생들은 4년제 대학생보다 수업의 질 하락을 민감하게 느꼈다.

경향신문이 에브리타임 실태조사에서 추가 취재 의향을 밝힌 대학생 211명에게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2차 설문을 실시한 결과, 전문대생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가장 손해를 본 점(복수응답)으로 ‘수업의 질’(33명 중 32명)을 꼽았다. 이어 ‘교수·선후배와의 네트워크’(20명), ‘친목’(19명) 순이었고, ‘수업 환경(개인공간·기기 등) 문제’도 18명으로 적지 않았다. 반면 일반대 학생은 비대면 수업에서 가장 손해를 본 점으로 ‘교수·선후배와의 네트워크’(168명 중 108명)를 꼽았다. ‘수업의 질 하락’(93명)은 ‘친목’(97명)에 이어 세 번째였고, ‘수업 환경 문제’는 48명으로 전문대 학생들에 비해 비중이 낮았다.

영남지역 보건대 간호학과 3학년 A씨는 비대면 수업에 불만족하는 이유를 묻는 주관식 질문에 “간호사는 임상실습을 통해 많이 배워야 하는 일이라 영상 수업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답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B씨는 “우리 학교는 2년제인데 1년 넘게 비대면이 돼서 친한 학우들이 단 한 명도 없는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음악 계열은 학우들과 가까워지며 인맥을 넓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음악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도 있다. 학기당 4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며 이런 대학 생활을 하는 게 불만”이라고 썼다.

대학들이 비대면 수업에 적응하고 있지만 일부 대학은 충분한 비대면 수업 인프라를 갖추기 어렵다. 서울권 일부 대학에 재정이 쏠리기 때문이다. 지방 학생들의 경우 ‘네트워크’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울 학생들은 학교에서 굳이 수업을 안 한다 하더라도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잘 갖춰져 있는데, 지방은 상호작용의 밀도와 빈도가 서울에 비해 굉장히 적다. 지방 청년들이 코로나19로 더 고립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불평등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막 발을 들일 때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취업에 유리한 경험을 쌓지 못할수록 저소득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데, 처음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벌어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이후 이행과정의 불평등 연구’를 보면, 첫 소득을 기준으로 청년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눠 10년 동안 추적조사한 결과 가장 하위 그룹은 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남 연구위원은 “대학을 포함한 학력의 서열구조가 이행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서열화된 교육구조의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보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더욱 심화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정책이 근간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할 대학생 계층 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손해를 본 대학생을 위한 생활지도와 사회성 프로그램, 심리지원 등을 준비해야 한다”며 “비대면 수업으로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실습 전공 대학생들의 직업역량을 기르기 위한 재정지원을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조해람·강한들·김혜리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