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떠있는 사과·바위.. 초현실적 순간의 아름다움
쏟아지는 댐 물·눈 마주친 새 등 작품
초고속 카메라로 찰나의 순간 포착
옥상에서 뛰어 내릴듯한 여성 모습 등
특유의 풍경사진, 세계의 주목 받아
인간을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한국인 작가 안준의 작품세계에 얼마나 흠뻑 빠져들었을까.
안 작가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날을 기억한다. 소녀 안준은 엄마에게 “내가 자라면 엄마 아빠가 늙어 죽기 때문에, 더 이상 자라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일단 태어나 자라고 늙어 죽고 그 가운데는 가족과 헤어진다니, 살아있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는 게 그 시절에 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약 30년이 흐른 지금, 소녀는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비유하는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사진 작가가 됐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위치한 금산갤러리에서 안 작가의 개인전 ‘On Gravity(온 그래비티):방향과 좌표’가 최근 시작됐다. 금산갤러리 주 전시장과 옆 윈도우 갤러리 두 전시장에서 사진 작품 약 40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중에 떠 있는 사과, 커다란 바위, 사람 등 평범한 것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독특한 풍경으로 보이는 사진 작품들이 보인다. 평범한 일상 배경 사진 위에 사과나 바위 등이 공중에 둥둥 떠 있다. 마치 합성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니다. 합성 기술도, 인공 조명도 사용하지 않은 아날로그적 수작업 노동으로 만들어진 실제 풍경이다. 작가의 부탁을 받은 가족들이 사과를 공중에 던지면 안 작가가 고속카메라로 숱한 사진을 찍는다. ‘몇장을 찍느냐’는 질문에 “세볼 수 없어 답을 하기 어렵다” 할 정도로, 쉼없이 셔터를 눌러 수많은 사진들을 찍고, 그 가운데 작품이 될 한 장을 고르는 것이 그가 1년 내내 하는 일이다. 그렇게 사과를 던지고, 돌을 던져서, 때로는 스스로 뛰어올랐다 착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는다. 이들의 숙명은 모두 중력에 이끌려 지면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작업 과정을 ‘미분’한다고 표현한다. 삶은 수학적으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모든 삶의 순간을 적분한 것이기에, 거꾸로 그가 포착하는 순간은 시간이라는 단위로 흘러가는 삶을 미분하는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가 말했다.
“고속사진, 저속사진을 구분하는 기준이 뭘까 궁금했다. 인간의 눈이 인지하는 속도보다 빠른가 느린가라고 하더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사진을 찍어 남기고, 중력으로 떨어지는 그 불가역적인 현상들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위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념하고 싶었다.”
안 작가가 이번 전시에 남긴 작가노트에는 엄마에게 ‘더는 자라고 싶지 않다’고 했던 날의 기억을 상세히 적어두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중력에 순응하거나 역행하는 여러 현상의 찰나’라고 설명한다. 단지 중력으로 인해 아무 저항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비탄하는 듯하면서도 기어코 역행하는 순간, 중력을 딛고 솟구쳐 오르는 순간도 촬영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위로 솟구치는 불꽃, 소용돌이, 새의 날갯짓이 그렇다. 상승하는 이미지들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 보여준다.
같은 연작의 다른 이미지들이 지구 반대편 유럽 스위스 취리히 크리스토퍼 귀 갤러리에서도 동시에 열리고 있다.
10월 22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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