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0월 초 통신선 복원" 남북관계 주도권 잡기 나섰다

박은경·정대연 기자 입력 2021. 9. 30. 20:54 수정 2021. 9. 30.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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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고인민회의서 시정연설
“남측, 말이 아닌 실천” 요구
청 “통신선 복원 조치 평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초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한에 경색된 한반도 정세의 책임을 돌리고 “말이 아닌 실천”을 요구했다. 미국을 향해서는 대북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중기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남북 및 북·미 관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김정은 동지께서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이틀째 회의에서 역사적인 시정연설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 투쟁방향에 대하여’를 하셨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경색돼 있는 현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 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하라”고 지시했다. 남북은 지난 7월27일 통신연락선을 13개월 만에 복원했지만,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실시를 문제 삼아 8월10일부터 남측의 정기통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조선은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심한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면서 “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해나가는가 아니면 계속 지금과 같은 악화 상태가 지속되는가 하는 것이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과 관련해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계속 밝히고 있는 불변한 요구”라며 “이것은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앞으로의 밝은 전도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도 선결돼야 할 중대과제”라고 했다. 지난 24~25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통해 밝혔던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인 이중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직접 언급한 것이다. 이 두 사안이 ‘양보할 수 없는 조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정은 “불안한 한반도 정세, 남측 이중기준·적대시정책 탓”

시정연설 마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끝내자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등 밝힌 종전선언 조건 직접 언급…‘양보 불가’ 강조
바이든 대북정책엔 “표현·수법 더 교활해져” 첫 입장 발표
미국의 선제적 조치 없이는 ‘대화 제의에 불응’ 뜻 다시 밝혀

김 위원장은 현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고 엄중한 경색 국면”이라고 평가한 뒤 그 원인으로 “미국과 남조선의 도를 넘는 무력증강, 동맹군사활동”을 꼽았다. 북한이 이달에만 3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한 책임은 회피하고, 남측과 미국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같은 적대시 정책이야말로 남북, 북·미 관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하고, 이중기준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 움직임을 막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국가방위력 강화는 주권국가의 최우선적 권리”라며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밝힌 핵기술 고도화, 핵무기 소형경량화 등 ‘국방 강화 목표’ 관철을 지시했다.

북한은 이전에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북 통신선 복원과 단절을 반복해왔다. 지난해 6월 남측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단절했다가 13개월 만인 지난 7월 재개했고, 8월에는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다시 끊어버렸다. 이 때문에 북한이 꺼내든 연락통신선 복원은 표면적으로는 남측 정부의 요구에 부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신선 복원 자체만으로는 남북관계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임기가 8개월 밖에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에 적극 나설 의지가 있는지를 시험하고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새 미 행정부의 출현 이후 지난 8개월간의 행적이 명백히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미국이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역대 미 행정부들이 추구해 온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가 대화만 제의하고 적극적 협상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이다. 미국의 선제적 조치 없이는 대화 제의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재차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단절된 북·미 대화의 재개 가능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통신선이 복원되고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겠지만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본적 문제’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강온전략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거나 남측의 일방적 태도 변화 요구, 대화의 재개와 중단 위협 반복 등으로 나타날 경우 신뢰회복보다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 담화, 미사일 발사, 김 위원장의 연설을 종합적이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다만 통신선 복원을 두고 김 위원장이 직접 호응한 것에 대한 기대감도 감지된다. 청와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통신선 복원에 대한 북한의 조치를 평가한다”며 “남북 간 현안들의 협의 해결을 위해 조속히 대화 채널이 복원돼야 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도 “안정적 운영이 기대된다”고 했다.

박은경·정대연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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