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실명 위기에 한줄기 빛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통해 실명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개안의 길을 열어주려는 세계 최초의 시도가 성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국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생명공학기업인 에디타스 메디슨(Editas Medicine)의 지원을 받은 연구진이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열린 망막변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그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를 맡은 미국 오레곤보건과학대 시각과학연구원의 마크 페네시 연구원은 2020년 3월부터 유전자가위를 직접 주입받은 실명위기 환자 6명 중 2명이 빛을 잘 감지할 수 있게 됐고, 그 중 한 명은 희미한 빛 속에서 미로를 헤쳐 나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발표 세션의 의장을 맡은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재크 던컨 안과학 교수는 시술이 실제적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하고 예비적인 징후가 정말 흥미롭다"고 말했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망막의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체 세포의 유전적 결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시력을 잃게 만드는 레베르선천성흑암시(LCA)라는 질환 환자들이다. 그들은 성인이 될 무렵 거의 음료수 빨대를 통해 보는 것과 같이 흐릿한 이미지만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으며 눈은 종종 좌우로 흔들리는 증세를 보인다.
2017년 LCA에 대해 승인된 유전자 치료법은 RPE65라고 불리는 유전자의 기능적 복사본을 망막 세포에 전달하기 위해 AAV라는 무해한 바이러스 벡터를 사용한다. 이 치료법은 국내에도 최근 도입돼 일부 환자가 암흑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AAV와 함께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은 LCA 질환의 가장 일반적 형태인 10형(LCA 10)에는 효과를 볼 수 없다. LCA 10은 다른 유전자인 CEP290의 결함에 의해 발생하는데, CEP290은 광수용체 세포 주위에서 다른 단백질을 결합시키는 것을 돕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불행하게도, CEP290은 AAV에 삽입하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에디타스 사는 대신 AAV를 사용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망막 세포로 운반한다. 이를 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Cas9 게놈 절단 효소의 디옥시리보핵산(DNA)과 두 개의 안내(guide) 리보핵산(RNA)이 안으로 들어가면 세포는 CEP290의 돌연변이를 잘라내는 Cas9을 생산함으로써 CEP290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단백질을 생산하게 만든다.
이날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시력이 심각하게 손상된 성인 6명의 한쪽 눈에 'EDIT-101'이라는 치료제가 주사됐다. 부작용이 있는 경우 눈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거나 가벼운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시력테스트 결과가 도출된 5명의 환자 중 3명은 시력 개선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중간 정도의 용량이 투여된 나머지 2명은 번쩍이는 빛에 대한 반응을 놓고 보면 치료 전보다 더 많은 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인 54세의 칼린 나이트라는 여성은 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시력 테스트에서 현저히 개선된 결과를 보였다. 그는 과거 시력차트의 맨 위에 있는 E를 읽지 못했으나 6개월 뒤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페네시 연구원은 밝혔다.
나이트는 또한 이전에 밝은 빛에서 실패했던 희미한 빛 속에서 장애물 코스를 정복했다. 그는 미국공영방송라디오 NPR과 인터뷰에서 이상 동료들의 사무실과 부딪히지 않게 됐다며 "좋아요. 저는 사람들을 겁주지도 않게 됐고 제 몸에도 멍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나이트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CEP290 유전자의 양쪽 사본에서 Cas9의 표적이 된 돌연변이가 있었기에 개선효과가 더 컸을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고 페네시 연구원은 설명했다.
LCA10에 대한 임상시험 연구자들은 현재 그 시험에서 가장 높은 복용량으로 성인 4명에 대한 추가 시험에 들어갔다. 에디타스 사의 최고의료책임자인 리사 마이클스는 쥐와 원숭이에 대한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더 많은 양을 복용하는 것이 더 강력한 임상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에디타스 사는 또한 곧 시범적으로 LCA 어린이 환자에 대한 치료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LCA 질환의 경우 성인에 비해 어린이 환자가 온전한 광수용체를 더 많이 가지고 있기에 더 좋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페네시 연구원은 설명했다. 어린이들의 뇌는 적응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향상된 시력신호 처리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한 임상시험 승인은 에디타스 사의 것이 최초이긴 하지만 그보다 늦게 시작한 임상시험 중에 2건은 이미 임상시험에서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심각한 유전적 혈액장애를 가진 환자들에게 빈혈, 통증, 그리고 다른 증상들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들의 줄기세포를 시험관에서 크리스퍼 가위로 편집한 뒤 재주입한 것이 효과를 거뒀다. 올해 6월에는 심장과 신경 질환을 일으키는 독성 단백질이 간에서 만들어지는 환자들의 혈액에 크리스퍼 암호를 갖춘 mRNA(전령RNA)를 지닌 지질 나노입자를 주입해 좋은 임상효과를 거뒀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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