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민군에 학살된 희생자 보상 0건.. 北 부역자는 억대 보상했다

노석조 기자 2021. 9. 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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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동 서울 현충원 위패 봉안관에 있는 여순사건 당시 전사한 14연대 소속 한 장교의 사진. /김연정 객원기자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여수·순천 사건 반란군 등 적대세력에 희생된 민간인에 대한 국가 보상이 지난 70여년간 0건인 것으로 30일 파악됐다. ‘가해자는 북한이기 때문에 보상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한국 정부에는 없다’는 보상 제도의 결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민군이나 빨치산 또는 여순 반란군 등에 동조·가담한 민간인들이 ‘진압 국군·경찰에 희생됐다’며 1억 5000만원가량의 국가 보상금을 신청하는 사례는 수백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심사를 할 때 적대 세력에 대한 가담·부역 여부는 묻지 않고 군·경에 희생됐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인민군·반란군에 희생된 이들의 유족이 보상받을 길이 현실적으로 없어 이들 중 일부는 ‘군·경에 의한 희생자’라고 입장을 180도 바꿔 보상금을 받으려는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사실상 권유하거나 유도하는 변호사나 단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각종 자료 등을 열람하고 그외 다른 관련 문서를 종합 분석한 결과, 북한 인민군 등 적대세력에 희생된 우리 민간 국민 가운데 국가 보상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인민군에 부역했거나 여순 사건 반란군에 가담해 가해 행위를 한 민간인들이 군경에 피해를 입었다며 1억 5000만원 가량의 보상금을 신청한 사례는 수백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 과정에서 적대 세력에 가담해 우리 국민에 대한 가해를 했는지를 따져 보상 대상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사실상 ‘가해자’가 ‘피해자’가 돼 부적절한 국가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 /연합뉴스

김 의원은 “여순 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일반 민간인에 대해선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그 행위에 대해서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여순 사건 당시 반란군 등 적대 세력에 협력해 적대 행위를 했던 민간인들은 사실상 ‘가해자’이므로 이들을 군경의 ‘희생자’ ‘피해자’라고 인정하고 국가 보상을 해주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부적절한 처사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민군 등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도 당연히 국가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적대세력 부역자에 대한 보상은 제외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한군’ 피해자가 ‘국군·경찰’ 피해자로 뒤바뀌다

북한 인민군이나 여순 사건 반란군에 희생된 민간인들이 보상받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자 자신들을 ‘군경에 의한 희생자’라고 입장을 바꿔 보상 신청하는 일도 늘고 있다. 김용판 의원실 자료 등에 따르면, 최초 보상 신청 시 인민군에 처형됐다고 기술했던 희생자의 유족들이 보상자 대상에서 탈락되고 나서는 일정 기간 뒤에 우리 국군에 희생됐다며 다시 보상 신청하는 사례도 다수 있었다. 북한에 의한 희생자가 국군·경찰의 희생자로 뒤바뀌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정부기관인 진실화해위가 북한 인민군이나 반란군 등 적대세력보다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보상 신청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실화해위가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진실규명 신청에서 결정까지 단계별로 살펴보는 진실화해 Q&A(문답)’ 자료에는 신청 방법이나 요령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정한 문답이 있다.

‘Q47. 사건 관련자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성명란에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입해도 되나요?‘

‘네 맞습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입하여도 무방합니다.’

진실화해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내 자료. 첫 표지와 중간 일부 내용을 캡처해 편집한 이미지. /조선일보

김 의원은 이와 관련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을 경우 ‘미상’ ‘불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진실화해위는 북한 인민군 등 적대세력이 가해자일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사실상 신청자가 가해자란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군, 경찰을 가해자로 적도록 유도하는 안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건번호 다-000의 전북 고창 지역 신청자의 경우 군인에 의해 총살당했다고 했지만, 확인한 결과 이들은 6·25전쟁 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의 2016년 4월 20일 최종 조사 결과에서 북한 인민군 등에 의한 납북자로 결정된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가해자가 북한에서 국군으로 뒤바뀐 상태로 보상 신청이 이뤄지고, 그 결과로 북한 인민군에 의한 희생 규모는 줄어들고 국군에 의한 희생자는 늘어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실화해위가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건에서 침략자인 북한 인민군보다 오히려 그 침략에 맞서야 했던 국군과 경찰을 가해자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6·25전쟁이나 남로당 활동,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정통성 등에 대한 인식이 뒤바뀌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진압한 뒤 여수 시가지에 진출한 국군. 짙은 연기를 뒤로 한 채 군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여순 사건

‘여순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국군 전신) 14연대 2000여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순천 등을 점령하면서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이다. 반란군은 지역 좌익 세력과 함께 ‘제주도 출동 반대’ ‘미군 즉시 철퇴’ ‘인공(人共) 수립 만세’ 같은 성명서를 여수 읍내 곳곳에 붙였다. 경찰관과 기관장, 우익 청년단원, 지역 유지 등을 여수 경찰서 뒤뜰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집단 학살을 했다. 정부는 군을 파견해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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