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정수를 지닌 심청가, 세상에 없던 심청가

2021. 9. 3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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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으로 전승되고 있는 심청가
각각 강산제·박록주제로 완창 선봬
조주선, 성창순 명창에게 전수 받고
채수정, 원형 새롭게 복원해 노래해
조주선은 국립전통예술고와 한양대에서 수학했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 역임 후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남원춘향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대상(1999)을 수상했으며,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이수자이다.
채수정은 이화여대에서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중모리 대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2011)을 수상한 바 있다.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소리꾼 조주선·채수정

하나의 작품을 '감상했다'라는 느낌보다는 이 작품과 같이 '해냈다'라는 느낌을 주는 공연이 있습니다. 바로 완창 판소리입니다. 중간마다 휴식 시간이 주어져도 짧게는 3시간, 길게는 6시간에 달합니다.

판소리는 오래된 전통음악입니다. 20세기 들어 판소리는 10~20분 분량의 특정 대목을 중심으로 전승됐고, 이는 '토막소리'라 불렸습니다. 그러던 중 1968년 소리꾼 박동진(1916~2003)이 '완창' 공연을 선보입니다. 그가 '완창'이라는 방식을 생각했던 이유는 토막으로 전승되던 판소리의 원형을 살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1968년 9월 30일, 서울 남산에 위치했던 국립국악고등학교 강당(현 국립극장 터)에서 그가 부른 '흥부가'는 다섯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듬해부터 '적벽가' 등 나머지 4편도 선보이며 판소리 다섯 바탕(심청가·흥보가·춘향가·수궁가·적벽가)의 완창 기록을 수립하고, 완창의 효시가 됩니다.

◇소리꾼과 관객이 함께 하는 소리의 마라톤, 완창

이번 9월에는 두 개의 심청가 완창 공연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난 11일에 조주선이 강산제 심청가 완창을 했고, 22일 채수정이 박록주제 심청가를 선보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심청가가 하나의 노래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심청가는 오늘날 여러 종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태어난 곳도 다르고, 전승한 소리꾼도 다릅니다. 따라서 각기 다른 분위기와 음악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국악에서 '유파'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여러 무대에 오르며 각자의 생활과 공연이 얼마나 바빴는지, 두 소리꾼이 얼굴을 맞댄 것이 십 몇 년 만이라 합니다. 채수정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실에는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지난 4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에서 선보인 '채수정의 흥보가' 공연(국립극장 달오름)입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오른 무대였는데, 귀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막막했던 기억이 나요. 어두운 관객석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관객들 얼굴의 하얀 마스크였어요. 평소라면 아는 얼굴도 보였을 텐데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관객의 추임새도 잘 들리지 않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완창판소리 공연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주자(走者)인 소리꾼의 '체력'은 기본입니다. 많은 양의 한문투 사설(가사)을 암기하는 '기억력'도 중요하고, 완주를 함께 하는 관객들이 지치지 않도록 적당한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즉흥적인 '구성력'과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북으로 장단을 짚는 고수와의 '호흡'은 더더욱 중요하죠.

공연이 후반으로 향하면 소리꾼과 관객이 파김치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관객은 이를 악물고 "잘 한다!" "좋다!" 등의 추임새를 소리꾼에게 보내어 그에게 힘을 줍니다. 하지만 채수정은 그 응원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고 합니다. 11일에 조주선이 선보였던 심청가 완창 공연은 채수정이 4월에 올랐던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입니다.

◇조주선, 정수를 지닌 심청가

심청가는 발생 지역과 전승한 소리꾼에 따라 여러 유파가 공존합니다. 조주선은 그중 '강산제 심청가'를 발표합니다. 이 심청가에 대해 묻자 그는 "선생과의 추억이 이 소리에 담겨 있다"며 스승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성창순(1934~2017) 명창입니다. 성 명창은 생전에 '넌 소리 도둑년이여'(1995)라는 저서를 남겼는데요. 판소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보형은 강산제 심청가와 성 명창에 대해 책 속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현재 심청가는 5·6종이나 전승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사설의 문학성으로 보나 곡조의 음악성으로 보나 두루 뛰어난 점이 많아서 널리 불리워지는 바디가 바로 성창순이 부르는 심청가인데, 이를 두고 이르기를 '강산제 심청가'라 한다. 조선 철종·고종 때 천하를 주름잡던 명창 박유전 심청가의 전통을 이은 '강산제 심청가'는 박유전의 제자이던 정대근에게 전해졌고, 다시 정재근의 조카이던 정응민에게 전해졌던 것인데 성창순은 정응민 문하에서 이 심청가를 배운 것이다."

조주선에게 스승은 "살갑지도 자상하지도 않은 스승"이었고, 성년이 되어서도 "소리 공부에서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은 깐깐한 스승"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서운 스승의 가르침은 조주선의 알찬 공력이 되었고, 조주선은 2001년 국립국악원에서 심청가 첫 완창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개인사로 보면 이번 완창은 심청가 완창 20주년 공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완창은 길고 긴 이야기이자 노래입니다. 그중 조주선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주과포혜' 대목입니다. 주과포혜(酒果脯醯)란 술(酒)·일(果)·말린 고기(脯)·식혜(醯)를 뜻합니다. 이는 제사상에 차리는 음식으로, 이 대목은 심봉사가 곽씨 부인이 죽은 후 평토제를 지내는 이야기입니다. 조주선은 1999년 남원 춘향제 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적에 이 대목과 함께 했습니다.

판소리의 태생과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조주선이 부를 심청가는 '강산제'에 속하는 소리인데요. 이러한 '강산'은 무엇일까요. 박유전(1835~1906) 명창으로 인해 꽃핀 강산제에 '강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연유는 다양합니다. 그는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활약한 당대 제일가는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네가 제일강산(第一江山)이다"라는 칭찬으로부터 '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더불어 그가 살았던 마을 이름인 강산리(岡山里)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요. 지난 11일 공연에는 고수로 김청만과 조용복이 함께 했고, 배연형의 해설과 사회가 함께 했습니다.

◇채수정, 세상에 없던 심청가

지난 22일 채수정이 선보였던 박록주제 심청가는 좀 남다릅니다. "조주선 선생이 부르는 '심청가'가 여러 종의 심청가 중 원형을 잘 보여준다면, 제가 부를 심청가는 복원을 통해 새롭게 내놓은 소리입니다."

이 심청가는 박록주 명창이 부른 심청가입니다. 채수정이 이 소리의 실체와 마주한 것은 공연이 아닌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였습니다. 박 명창은 "몇 년, 몇 월 소리꾼 박록주가 부른 심청가요"라는 말과 함께 이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담았습니다. 이를 끝으로 박록주의 심청가는 세상에 나온 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한 명창이었기에 자신만의 공력을 불어넣은 이 노래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왜 박 명창의 소리는 오랫동안 이 안에 머물렀던 것일까요. 아마도 소리꾼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소리와 노래를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로 다른 이가 부지런히 가꾸고 다듬은 소릿길에 발을 들이지 않는 상도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않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채수정은 카세트테이프 속에 담긴 박 명창의 심청가를 받아 적고 따라 불렀습니다. 소리꾼 이전에 복원가로, 또 판소리 연구가로 세상에 없던 '심청가'를 다듬고 더듬어 2013년에 작은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언론은 "40년만에 복원된 심청가"라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공연은 이 심청가를 완창으로 선보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카세트테이프는 당시 오래된 음원을 수집·연구하는 음악학자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채수정을 찾아갔던 이유는 채수정이 박송희(1927~2017) 명창에게 소리를 물려받았고, 그런 박송희 명창은 박록주(1905~1979) 명창에게 소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판소리에는 '더늠'이라는 게 있습니다. 명창들이 어느 노래에 자신만의 노랫말과 개성을 녹여 넣은 기법입니다. 그래서 '더 넣다'라는 말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는데요. 박록주와 박송희로부터 채수정에게로 이어진 소리의 핏줄에는 두 명창의 더늠이 섞여 있었고, 그래서 채수정만큼 박록주 명창의 소리와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소리꾼이 없다는 그 학자의 믿음과 확신이 있었던 것이죠.

채수정은 스승의 스승이 남긴 "몇 년, 몇 월 소리꾼 박록주가 부른 심청가요"라는 한 마디를 듣고 난 뒤 만감이 교차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소리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그 소리가 몇십 년 만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 22일에 펼쳐졌습니다. 어쩌면 박록주 명창의 그 마음은 눈을 뜨고 세상의 빛을 보고 싶어한 심봉사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무대에는 고수 박근영도 함께 했습니다.

글=송현민(음악평론가)·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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